올해 5월과 6월에는 달력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월초 연달아 포진된 빨간 날에 '좀 쉴 수 있겠다'는 설렘이 가득하다. 직장인들은 컴퓨터를 바라보고는 있지만 이미 국내여행과 해외여행이란 선택지를 놓고 딴 생각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연휴는 중간에 평일이 낀 '샌드위치 연휴'라는 것이 문제다. 연차를 쓰지 않으면 긴 휴가는 물 건너간다. 과중한 업무에 몇몇은 회사에 나와야 하는 상황에서 누가 연차를 거머쥘 지 눈치작전이 치열하다.
◆'연차 쓰기' 작전은 1달전부터…"저희 재고 많아요"
IT 부품 수입 회사에서 근무하는 A(29)씨는 5월 첫주 황금연휴 가운데 평일 금요일이 꼈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했다. 재고관리를 하는 것은 A씨만의 업무라 다른 팀원들은 모두 연차를 써 긴 연휴를 즐길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겨울 휴가 이후 제대로 쉰 기억이 없는 A씨는 "혼자 일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4월부터 연차를 내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황금연휴를 위해 1달 전부터 장기 계획을 세웠다. 주문할 때마다 수량을 평소보다 늘려 접수해 물량을 조금씩 확보했다. 창고에는 자연스럽게 재고가 쌓였고 사장님은 지난 4월 말 "이번주에는 물건을 주문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A씨는 "바로 연차를 내고 제주도행 비행기표도 결제했다"며 "계획은 완벽했다"고 말했다.
◆"난 비행기표 미리 끊어놔서 연차 포기 못해"
지난 월요일 조회시간, 유통 회사 소비자관리팀에서 일하는 B과장(34)은 밀려오는 졸음에 눈꺼풀을 감다 C부장(46)의 호통에 잠이 쏙 달아났다.
"'후배 교육을 어떻게 시켰냐'고 소리를 지르시더라고요. 졸다가 앞뒤도 모르고 죄송하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이번 6월 연휴에 낀 목요일 연차 문제였어요."
B과장은 부서 특성상 언제든지 소비자 민원이 발생할 수 있어 샌드위치 휴일은 웬만하면 쉬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한두 명쯤은 괜찮다'는 부서 내 암묵적 합의가 있어 서열대로 돌아가면서 긴 연휴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직 입사한 D대리가 "연휴에 연차를 쓰겠다"고 선언해 B과장에 심기를 거슬렀다. D대리는 회사에 적응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쉬고 싶다고 주장했다. 그가 싱가포르 행 비행기표를 미리 구매했기 때문에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하자 팀원 모두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게다가 이번 샌드위치 연휴에는 임산부였던 E대리가 쉬는 차례였기 때문에 분위기는 더욱 굳어갔다. B과장은 "결국 모두에게 불똥이 튀어 쉽게 연차를 쓰겠다는 말을 못 꺼내게 됐다"며 "몸이 무거운 E대리만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D대리가 결국 싱가포르로 여행을 떠나느냐는 질문에는 "당일 혼이 난 이후에 별말이 없는 것 같아 잘 모르겠다"면서도 "그 정도 '패기'면 모두의 의견을 무시하고 쉴 확률도 높지 않겠냐"며 웃었다.
◆연차는 직장인의 권리, 그러나 이기적으로 주장해서는 안 돼
연차는 법으로 규정된 직장인의 소중한 권리로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종업원이 1년 동안 근무했을 때 발생한다. 사용자는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줘야한다.
그러나 모두가 쉬고 싶은 날짜에 연차를 쓰려고 한다면 팀원들 간의 의견 조율이 중요하다. 자신의 편익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팀 내 불화가 야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한 인사담당자는 "최근 사내 문화가 많이 바뀌면서 연차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분이기로 바뀌고 있다"면서도 "모두가 쉬고 싶은 날에는 미리 의견을
이어 "평소 연차를 쓸 때도 몸이 아프다거나 집에 급한 사정이 생기지 않는 이상 여유를 두고 상사에게 말하는 것이 좋다"며 "직장생활도 사회생활이니 만큼 서로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매경닷컴 이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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