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멘트 】
세월호가 침몰된 지난 16일부터 여드레 동안 진도 현지에서 취재를 한 이성식 기자와 함께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 질문1 】
안타깝게도 사고 이튿날부터 구조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봤을 때 구조가 왜 이렇게 힘든 건가요?
【 기자 】
처음에는 날씨도 도움이 안 됐습니다.
저희도 초기에 배를 타고 직접 해역으로 가보려고 했는데요.
바람이 많이 불고, 파도도 높게 쳐서 30분 만에 돌아왔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유속이 느려지는 조금 기간이어서 기대를 많이 했지만, 생각만큼 환경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바다를 보면 표면은 잔잔해 보이지만 실제로 물속은 조류가 굉장히 빠르게 흐릅니다.
특히 사고해역은 물살이 워낙 빠른 지역이거든요.
【 질문2 】
실종자 가족들의 심정은 바싹 탈 수밖에 없을 텐데. 취재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 기자 】
현장을 생각하면 무거운 마음뿐입니다.
우선 제가 기자라고 얘기하면서 취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처음에는 전례 없는 대형 참사에 취재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이 큰 반감을 표시했습니다.
촬영하는 영상취재기자를 대상으로 몸싸움이 벌어지는 경우까지 있었습니다.
아무 말 하고 싶지 않은 가족들의 애타는 마음을 저희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취재를 하고 있습니다.
또 저희에게 먼저 다가와서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보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 질문3 】
팽목항에도 실종자 가족들이 많이 보이던데요. 환경이 아주 열악하다고요?
【 기자 】
팽목항은 진도읍에서 22km 떨어져 있고, 식당 두 곳과 2층짜리 대합실이 전부인 외딴 지역입니다.
실종자 가족 100여 명은 이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진도체육관에 임시거처가 마련돼 있지만, 실종자가 발견되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장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허허벌판 같은 이곳에서 일주일 넘게 지내려니 몸도 마음도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낮에는 뙤약볕을 피할 공간이 없고,
밤에는 강한 바닷바람과 추위를 모포와 전기난로를 두른 채 버티고 있습니다.
【 질문4 】
자원봉사자들도 많이 도착했고, 또 구호물품도 상당히 많이 도착했다고요.
【 기자 】
전국에서 약 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생업을 뒤로 한 채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밥을 대접하는 분들부터, 의사·약사를 비롯해서 빨래를 대신 해주는 분들까지 많은 분이 참여하셨는데요.
한 자원봉사자의 얘기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 인터뷰 : 이문희 / 자원봉사자
- "한 숟갈이라도 뜨셨으면 하는 마음에 열심히 준비해서 대접하고 있습니다. 식사하고 가시는 것만 봐도 가슴이 울컥하고…."
오늘(24일)은 터키나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자원봉사를 위해 도착했습니다.
터키는 한국과 형제 국가로 꼽히잖아요.
이들은 전통음식인 케밥 2천인 분을 준비해 왔으며, 터키에서 케밥의 의미는 '먹고 힘을 내는' 음식이라고 합니다.
또 안타깝게 진도까지 올 수 없는 시민들은 구호물품을 보내며 마음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택배는 온종일 이어져 하루에만 8톤 트럭 다섯대 분량이 왔습니다.
10개 중 8개는 실종된 학생들의 또래 중·고등학생이 보낸 겁니다.
택배마다 친구의 무사 귀환을 기도하는 응원 메시지가 가득 적혀 있습니다.
【 질문5 】
현장에서 아쉬웠던 점 추가로 말씀해주신다면요?
【 기자 】
물론 지금 가장 급한 것은 구조일 겁니다.
한시라도 빨리 소중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겠죠.
다만, 처음에 현장에 가서 우왕좌왕하는 초동대처를 보며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차적으로 배에서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한 선장과 선원들, 또 배 관리에 소홀했던 해운회사에 대한 책임 반드시 물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이후 대응방식도 문제입니다.
당국자들이 부처별로 우왕좌왕하면서 기본 중의
이런 늑장대응 하나하나가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지 않겠습니까?
또 구조 작업도 대형 바지선 같은 경우는 실종자 가족들의 요청에 의해 나흘 만에 도착했습니다.
제대로 된 재난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반성하고 또 고민해봐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