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 있어요?"
스물여섯살 박은아(가명)씨가 들은 질문이다. 조금 특이했던 점이라면 물어본 사람이 40대 중년 남성이었다는 것과 질문을 들은 장소가 면접장이었다는 것. 면접장에서 오가는 수많은 질문 중 하나로 치부하면 그만이지만 구직자 입장에선 그게 아니다. 사생활은 물론 인신공격성 질문까지 받으면서도 웃어야 하는 '취업준비생' 입장에선 질문 하나 하나가 가슴에 박힌다.
◆ "아무리 면접이라지만 너무해"
면접이 이뤄지는 작은 회의실 안에서 면접관과 구직자는 철저한 갑과 을의 관계가 된다. 최근에는 '압박면접'이라는 명분으로 지원자의 말꼬리를 잡거나 인신공격성 발언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남자친구가 있느냐' '결혼은 언제 하느냐' 등 사생활에 관한 질문을 받은 박씨의 경우는 차라리 나은 편이다. 일부러 개인의 경험을 깎아 내리거나 능력을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이정훈(28·가명)씨는 요즘 다들 있다는 그 흔한 해외 어학 연수나 교환학생 경험이 없다. 넉넉치 못한 형편에 국내에서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주위에서도 하나같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난관은 면접장에서 찾아왔다.
해외경험이 없는 박씨에게 면접관은 "어학연수는 왜 안 다녀왔냐" "토익은 높은데 이거 사실상 서류 상의 점수 아니냐" 등의 꼬투리를 잡았던 것이다. 이 씨가 해외 경험에 대한 소신과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고 답하자 돌아오는 건 "요즘엔 체험 프로그램도 많고 무료로 봉사활동 하는 것도 많은 데 찾아보려는 노력이 부족한 거 아닌가?"란 면접관의 직격탄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회사의 장단점을 평가해보라는 질문에 지원한 부서가 아닌 타 부서의 이야기를 했더니 "그럼 거길 지원했어야지"라는 식으로 말하는 바람에 진땀을 빼기도 했다.
이 씨는 "아무리 면접이라지만 괜한 질문들로 사람을 곤란하게 하거나 괜히 트집을 잡는 것 같다"면서 "능력을 판단하려는 건지 그냥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취업준비생들끼리 하는 '우리는 갑을병정 중 '정' 쯤에 있는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 "면접 분위기 좋으면 기업 호감 높아져"
같은 '압박 면접'이라는 이름을 달고도 면접관과 구직자 모두 만족스러운 면접 경험을 하는 경우도 있다. 열정적이고 훈훈한 분위기 덕에 타 회사 입사를 포기하는 사례도 있을 정도다.
조민우(32·가명) 씨는 지금 회사의 합격 발표가 나기 전 사실 다른 곳에서 이미 합격 통보를 들은 상태였다. 면접비나 받을까 싶어 갔다가 면접관들의 열의있는 질문과 인사팀의 배려깊은 태도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물론 두 회사 모두 비슷한 고용 조건이었기에 가능했지만 조 씨는 면접 분위기가 미친 영향이 상당하다고 회고했다.
면접관과 구직자 사이가 일방적으로 한쪽이 선택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에게 알맞은 회사와 인재를 찾는 동등한 사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줬기 때문이다. 질문의 내용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업무 연관도가 높았고, 다소 대답의 방향이 어긋나더라도 왜 그렇게 생각했는 지를 한번 더 물어봐줬던 것이다.
조 씨는 "수차례 면접을 치러보니 면접관들이 구직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일부러 트집을 잡는 경우가 상당했다"며 "면접장에서 보여주는 면접관을 비롯한 직원들의 모습이 결국 기업 이미지와 직결된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다수 구직자들은 면접에서 불쾌감을 느낀 경험이 있었다.
지난해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취업준비 중인 남녀 구직자 44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0.3%가 '면접관의 언행 및 태도로 불쾌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불쾌감을 느낀 이유(복수응답)로는 '면접관이 시종일관 무시하는 등 압박면접을 해서'가 응답률 33.3%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 '능력을 저평가하며 자질을 의심해서(29.7%)', '연애, 가족관계 등 사생활에 대해 지나치게 질문해서(26.3%)', '얼굴, 체형 등 외모를 지적해서(13.6%)', '면접을 오래 기다리게 해서(10.4%)', '다른 지원자들과 차별하는 질문을 해서(9.8%)', '지나치게 어려운 질문을 많이 해서(7.0%)'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면접장에서의 경험이 향후 기업 이미지를 평가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구직자들에게 불쾌감을 느낀 후 기업에 대한 비호감을 어떤 식으로 표현했는지 질문한 결과, '해당 기업에 합격해도 입사하지 않았다'는
[매경닷컴 김잔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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