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그룹에 다니는 서른 여섯살 이 대리는 알람시계를 3개나 맞춰 놓고 잠자리에 든다. 하지만 제때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기에다 굼뜬 행동탓에 오늘도 지각이다. 오전까지 시장모니터링 조사보고서를 마무리 해야 하는데 아직 손도 못댔다. 서울 명문 S대학을 나왔음에도 입사동기들 보다 승진이 늦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 대리는 "딱 2시간만 더 주면 멋진 보고서를 만들 수 있는데…, 회사는 언제나 시간을 빠듯하게 줘 실력발휘를 못하게 한다"고 투덜댄다.
하지만 막상 업무시간에는 '시간 때우기'가 이 대리의 주특기.
부장이 자리를 비우면 바로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모바일 게임 등으로 시간을 때우는 게 일상이다.
반면 이 대리와 입사동기인 김 과장은 지방대학 출신에 어눌한 사투리로 발표력도 그저 그렇다.
그러나 매년 인사고과에서 최고점을 받아 동료들을 놀라게 하는 인물이다. 그가 최고점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은 매일 아침 15분동안 워밍업 하듯 소리 내어 신문 읽기를 한다는 것. 이는 밤동안 경직된 머리를 풀어줘 실전에서 바로 실력발휘에 돌입할 수 있다는 게 김과장의 설명이다. 여기에다 점심시간도 30분 단위로 쪼개 관리하는'시(時)테크'전략도 한 몫했다.
◇ 똑같이 주어지는'점심시간'1년 뒤에는…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성공과 행복이 결정된다. 더욱이 무한경쟁 시대에는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 활용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다.
앨빈 토플러는 저서 '부의 미래'를 통해 "미래 부의 기반은 시간·공간·지식에 있다"며 "이중 가장 중요한 '시간(Time)'을 생각없이 다루는 사람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빌 게이츠 회장도 '시간 낭비는 인생 최대의 실수'라는 말을 언제나 강조했다. 시간이 아까워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을 즐겨 했는데, 다른 일을 절대로 동시에 할 수 없는 머리감기를 가장 싫어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매일 헛되게 보내는 자투리시간 30분으로 일주일에 책을 한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보라. 1년이면 50여권을 독파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2~3년을 꾸준히 투자하다 보면 평소 배우고 싶었던 외국어 회화 하나쯤은 '일상회화'수준으로 만들 수 있다.
김 과장은 다른 동기들에 비해서도 외국어 실력이 좀 떨어졌다. 그렇다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매일 먼 거리에 있는 학원을 꼬박꼬박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업무시간이 불규칙 하기 때문이다. 몇번이나 시도를 했지만 한달 평균 4~5일 출석하는 게 고작이었다.
더욱이 부쩍 오른 학원비는 교재비를 포함해 월 20만원에 육박했다. 보험설계사 일을 하는 대학친구는 만날 때 마다 "이 돈이면 노후대비로 연금보험에 가입하는 게 더 낫다"고 말하곤 한다. 물론 실적을 올리기 위한 친구의 영업성 멘트라는 것을 알지만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결심한 것은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김 과장은 흔들렸던 생각을 다 잡고 묘수를 찾았다.
바로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것. 스마트폰에 'EBS 교육용 어플'을 깔았더니 국내 최고 수준의 강의를 언제 어디서나 쉽게 공부할 수 있었다. 가격도 저렴해서 연간 14만원. 월 1만원정도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다양한 회화공부를 무제한 다시듣기도 가능했다.
출·퇴근 시간이 2시간 여가 넘게 걸리는 김 과장이 길 바닥에 흘려 버리는 시간을 중국어 회화공부에 투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 과장은 시나브로 중국어 회화가 부쩍 늘었다. 올 여름휴가에는 학원비를 아낀 돈으로 중국 배낭여행을 계획 중이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정 대리도 점심시간을 활용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정 대리는 구내식당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바로 근처 공원에서 매일 40분정도 산책을 한다. 비가 오는 날에도 공원을 몇바퀴 돌아야 직성이 풀릴 만큼 이제는 생활의 한 부분이 됐다. 이 덕분에 피로의 주 원인이었던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해 건강검진에서는 정상치가 나왔다.
'만물박사'로 통하는 배 과장 역시 점심식사 후 취미생활로 스크랩 활동을 한다. 평소 책을 읽으면서 밑줄 그은 글귀나 신문에서 본 정보, 평소 가보고 싶은 맛집이나 여행지 등을 스크랩 해두곤 한다.또 테마별 명함집도 만들어 인적 네트워크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벌써 스크랩 해 둔 케이스만도 십여권. 이제는 배 대리의 '보물 1호'가 됐다. 요즘 여성 직장인들은 취미나 예술 및 실용강좌에 점심시간을 투자하기도 한다. 요리 강습과 더불어 만든 요리를 시식함으로써 간단한 요기도 가능한 백화점 문화센터나 관심 분야의 강좌를 들을 수 있는 아카데미와 강습 등도 인기다.
점심시간을 제대로 활용하고 싶다면 이동 시간과 거리가 짧은 곳을 택해 일주일에 2~3회 정도의 무리하지 않는 일정으로 계획해야 한다. 또 프로그램과 참여와 동시에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효과적이다.
◇ "'시간의 틀'에 갇혀 있지 않으신가요?"
매번 승진인사에서 누락된 A그룹 이 대리도 이제 뭔가 달라져야 함을 느끼고 일과표를 빡빡하게 짰다. 새벽 4시에 일어나 1시간 30분동안 운동 후 영어공부를 1시간 동안 하고 회사로 출근, 점심시간 자투리 시간에는 독서를, 퇴근 후 21~22시 컴퓨터 자격증 공부, 22~24시 중국어 공부를 하다 잠자리에 든다는 알찬(?) 계획. 하지만 이 대리는 이 계획을 나흘도 채 못 지켰다. 몸을 혹사 시킨 나머지 회사에도 출근하지 못할 만큼 앓아 누웠기 때문이다.
시테크 전문가들은 "시간의 틀에 갇혀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수동적인 시간관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즉 유동적으로 시간관리를 하되 본인이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시간대에 중요한 일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직장일에 몰두할 시간과 더 먼 미래에 투자할 시간, 집안 일에 신경쓸 시간 등을 고려해서 자신의 하루를 이끌어 가는 게 효율적인 시테크 전략이라고 입을 모은다. '오리 줄 세우기'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일을 논리적으로 질서있게 처리하면 노력한 이상의 대가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가장 먼저 처리할 일이 무엇이고, 어떤 일이 중요한지를 구분하면 이미 시테크의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A그룹에 다니는 이 대리의 시테크도 중요도에 따라 A, B, C그룹을 만들고, 각 그룹별로 먼저 처리해야 하는 것에는 빨간색을, 나중에 처리해도 되는 일은 노란색으로 나름의 가치를 부여했다면 성공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팁>
전문가들이 제언하는 시간관리 황금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루의 시작, 일정부터 체크하는 습관 ▲해야 할 일을 기록 ▲중요한 일을 시작할 때는 마감시간을 미리 정한다 ▲중요한 일은 정신집중이 가장 잘 되는 시간대에 배치 ▲작업량이 많은 업무는 자신의
[매경닷컴 류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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