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강의 기적'을 이룬 역군들이 있었습니다.
봉제공장, 가발공장에서 일하던 여공들인데요.
이들은 과거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김한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 기자 】
하루 15시간 노동을 하던 공장의 여공들.
"2번 시다(보조원), 빨리빨리."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말해 봐도 돌아오는 것은 책망뿐입니다.
"어이, 너는 어디 가노?"
"변소 가는데요.
"너는 변소를 하루에 몇 번씩 다니나?"
산업화의 역군이었지만 일명 '공순이'로 불리며 차별에 시달렸던 공단 여공들.
이들의 애환을 기억하기 위한 작은 공간이 문을 열었습니다.
여럿이 찬물에 세수하던 공동세면장, 여공들이 희망을 품고 공부하던 야학 등 과거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 복원됐습니다.
▶ 인터뷰 : 윤민혁 / 초등학교 2학년
- "우리는 책상에서 하는데 이분들은 박스에다 신문지 깔아놓고 하니까 혼자서 공부하니 너무 외로울 것 같아요."
지금은 쪽방촌에 가야 볼 수 있는 여공들의 방, 이른바 '벌집'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 스탠딩 : 김한준 / 기자
- "보시다시피 발을 뻗기도 힘들 정도로 좁은 공간입니다. 여공들은 이곳에서 서너 명이 모여 칼잠을 자야 했습니다."
▶ 인터뷰 : 심상정 / 진보정의당 의원 (과거 미싱사)
- "그때 당시는 비키니 옷장 하나 놓고 세 명이 칼잠 자면 딱 맞는 그런 작은 1.8평 정도 되는 방이고요."
오빠와 남동생을 위해 산업현장에 뛰어들어야 했던 우리의 어머니들.
이들이 있어 한강의 기적도 존재했습니다.
MBN뉴스 김한준입니다.
[ beremoth@hanmail.net ]
영상취재 : 김병문 기자
영상편집 : 국차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