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에도 호국 영령을 기리는 추모식은 전 국민과 나라가 잊지 않고 챙기는 대규모 국가 행사였습니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 같은 호국보훈 역사가 담긴 기록물 37건이 일반에 공개됐습니다.
갈태웅 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
((현장음))
"영령이시여, 안심하소서! 3천만 국민은 결연한 유지를 반드시 성취시키고야 말 것이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부산의 동래육군병기학교 교정.
전쟁 중이지만,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요인과 외국 외교사절 등이 대거 참석했을 정도로 전사자 추모식은 국가 중대사였습니다.
이 추모식은 1955년까지는 육·해·공군 합동 형태로 진행되다, 1956년부턴 현충일 행사로 바뀌었습니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처음 열린 제1회 현충일 기념식.
휴전 후 3년, 소복을 입은 유가족들이 오열하는 모습은 남편과 자식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슬픈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에 맞섰던 김병로 대법원장의 참배 모습도 눈에 띕니다.
((현장음))
"거울은 닦을수록 빛이 나듯이, 선열의 높은 뜻은 날이 갈수록 오히려 마음속에 새롭습니다."
군인 위주로 안장됐던 동작동 국립묘지는 1960년대부터 경찰 등 그 대상이 확대됐습니다.
하지만, 동작동 국립묘지의 수용 여력이 한계에 이르자, 정부는 1985년 대전에 제2 국립묘지를 새로 조성했습니다.
행정안전부는 이 같은 호국보훈 역사가 담긴 기록물 37건을 공개하고, 온라인 서비스에 들어갔습니다.
MBN뉴스 갈태웅입니다. [ tukal@m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