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대구와 광주에서 중학생들이 학교 폭력으로 잇달아 목숨을 끊은 데 이어 지난 16일 경북 영주에서 중학교 2학년 이 모 군이 20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졌습니다.
이군은 자살하기 직전 자신을 괴롭힌 전 모 군에게 문자를 남겼습니다.
"내가 죽고 난 뒤 장례식에 오면 죽는다"
이 군이 남긴 유서에는 이 군이 전모군으로부터 받은 학교 폭력의 실상이 고스란히 적혀 있습니다.
뒷자리에 앉은 전군이 수업 시간 중 연필로 찌르고 때리고, 쉬는 시간에 강제로 뽀뽀하고 껴안고, 주말에는 전 군의 집에서 상습적인 구타가 이뤄졌습니다.
전군은 자신보다 힘이 약한 동급생 10여 명을 끌어모아 일종의 패밀리를 만들고서 대장 행사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전군은 장난삼아 그랬다고 했습니다.
친구를 괴롭히는 것이 장난처럼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 지금의 학교 현실인 듯합니다.
문제는 학교와 경찰입니다.
전 군의 괴롭힘이 일 년 전부터 쭉 계속됐고, 심리검사에서는 '자실 고 위험군' 판정을 받았는데도 학교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심리검사 두 달 뒤에 학교폭력 상담센터에 가 상담을 받았지만, 가해학생인 전 군의 존재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영주경찰서도 지난 2월 이 학교에 대해 학교폭력실태 설문조사를 벌였지만, 아무런 징후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교육 당국의 학교폭력 대책도 무용지물입니다.
교과부는 지난 2월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내놨습니다.
당시 김황식 국무총리와 이주호 교과부 장관의 얘기 직접 들어보시죠
▶ 인터뷰 : 김황식 / 국무총리(2월6일)
- "앞으로 학교폭력을 좌시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이번에 못 고치면 앞으로도 못 고친다는 심정으로 이 문제를 끈질기게 챙겨나갈 것입니다."
2명의 복수 담임을 두고, 가해 학생은 학교에 나오지 못하도록 하고, 특히 이번에 문제가 일진회와 같은 폭력서클은 경보제를 도입해 뿌리를 뽑겠다고 했습니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의 말도 들어보시죠.
▶ 인터뷰 : 이주호 / 교육과학기술부 장관(2월6일 뉴스 M 출연)
- "신고가 두 번 이상 들어왔다거나 지표를 개발해 지표상 의심되는 학교에 경보를 울려서 그 학교를 집중적으로 조사해서…"
교과부는 나아가 모든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학교 폭력 실태 전수조사까지 벌였습니다.
당시 학생들과 일선 학교 관계자들은 정부의 종합대책이 실효성이 없다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했습니다.
이번 죽음을 보면 그런 비아냥이 사실은 정확한 지적이었고, 정부의 대책은 탁상행정에 불과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실제로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올 초 전국 초중고생 9천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학교폭력 피해율은 18.3%로 2010년 11.8%보다 높아졌습니다.
또 폭력피해 학생 가운데 자살 충동을 느낀 비율도 31.4%에 달했습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이런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학생과 학부모, 학교, 그리고 교육 당국이 힘을 하나로 모아야 그나마 이런 죽음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당장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재판을 둘러싸고 이념에 따라, 성향에 따라 극과 극의 갈등이 표출되고 있습니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자 매수혐의로 기소된 곽노현 교육감은 어제 항소심 재판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법원은 그러나 곽 교육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법정구속을 하진 않아 곽 교육감은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교육감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됐습니다.
곽 교육감은 오늘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 인터뷰 : 곽노현 / 서울시 교육감
- "제 행위가 범죄행위이며, 후보매수이며, 파렴치한 행위였다면 저는 그것을 절대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새로운 교육, 반듯한 교육, 훌륭한 교육, 서울 교육의 새장을 열고자 한 제가 어떻게 부정한 뒷돈 거래를 할 수 있겠습니까?"
재판부의 결정을 시민의 힘으로 뒤엎어달라는 호소일까요?
보수진영의 행동도 눈살을 찌푸르게 하고 있습니다.
보수언론과 보수성향의 단체들은 재판이 있기 전부터 곽 교육감의 사퇴를 압박했고, 매일 같이 서울시 교육청에 몰려가 시위를 벌였습니다.
오늘도 한 보수단체가 기자회견장에 난입해 곽 교육감의 기자회견을 막기도 했습니다.
곽 교육감과 그를 지지하는 진보진영도, 또 곽 교육감을 반대하는 보수진영도 3개월 뒤에 있을 대법원의 판결을 조용히 기다리고 나서 그 결정을 따르면 안 되는 일까요?
그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싸우는 걸까요?
혹시 학생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 사회의 권력을 잡으려고 싸우는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편을 나누어 싸우는 시간에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해 머리를 맞댈 수는 없는 걸까요?
더는 학교 폭력으로 안타까운 죽음이 나오지 않게 말입니다.
학교 폭력으로 숨진 학생들에게 너무나 부끄러운 어른들의 자화상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 김형오 / hokim@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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