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비리와 같은 대형 사건을 주로 다루는 대검 중앙수사부가 다시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어제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가 수사 중이던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의 '뭉칫돈 7억 원' 수사를 대검 중수부로 넘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수사는 중수부 산하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이 담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은 SLS 이국철 회장의 폭로 의혹 사건을 수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여직원 임 모 씨 계좌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7억 원을 발견해 수사해 왔습니다.
이상득 의원은 이 돈이 자신의 것이며, 부동산 매각 대금과 축의금 등으로 들어온 현금이라고 검찰에 소명서를 제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수사를 갑자기 왜 저축은행 비리 합수단이 맡게 되는 걸까요?
이 의원의 수상한 7억 원이 저축은행 비리와 관련이 있다는 걸까요?
검찰 안팎의 얘기를 들어보면, 합수단은 영업정지된 프라임저축은행이 퇴출당하지 않으려고 이상득 의원 측에 수억 원 대 금품로비를 벌였다는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만일 이 돈과 저축은행 비리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 이상득 의원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중수부가 지휘하게 됩니다.
물론 이상득 의원 측은 어느 저축은행으로부터도 청탁이나 금품로비를 부탁받은 적이 없다고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대검 중수부의 칼끝은 현 정권 실세인 이상득 의원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전 정권의 핵심부도 다시 겨누고 있습니다.
바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의 미국 아파트 매입 의혹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검 중수부 수사를 받다 서거하면서 중단됐던 그 사건이 다시 수사 선상에 오른 셈입니다.
보수단체와 일부 언론은 지난 2009년 1월 재미 카지노 매니저인 이 모 씨 형제가 13억 원이 담긴 상자 7개를 수입차 판매상인 은모씨에게 보냈고, 이 돈은 다시 한국계 미국인 변호사 경모씨에게 전달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경모씨는 바로 미국 뉴저지주 허드슨 강변에 있는 고가의 아파트를 정연씨에게 처분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이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가 경모씨로부터 산 아파트의 돈을 누군가 대신 경씨에게 준 셈입니다.
검찰은 일단 미국으로 어떻게 돈이 흘러갔는지, 경씨에게 간 자금의 성격이 무엇인지만을 보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딸 정연씨까지 수사를 확대할 계획은 아직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가 돈의 출처까지 밝히는 단계까지 가는 게 순서라면, 딸 정연씨까지 수사가 미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게 안팎의 전망입니다.
이 13억 원이라고 하는 돈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였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일까요?
박연차 전 회장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13억 원은 자신의 돈이 아니며, 자신은 당시 구속된 상태여서 내용을 전혀 모른다고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쨌든 이 돈이 딸 정연씨와 관련이 있든 없든, 또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예상하긴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대검 중수부는 다시 고 노무현 대통령을 수사하는 셈이 됐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사 도중 서거해 '공소권 없음' 결정이 난 사건을 재수사하는 이례적인 일입니다.
대검 중수부가 이처럼 전·현직 정권의 핵심부를 동시에 수사하는 이유는 뭘까요?
어느 한 쪽만 수사하면 편파수사, 정치수사라는 비판을 받으니까 그걸 피하기 위해서일까요?
그렇다면, 정말 검찰이 수사하고 싶은 것은 이상득 의원일까요? 아니면 딸 정연씨일까요?
범죄 혐의가 있다면 시기와 관계없이, 또 대상에 관계없이 수사하는 게 맞지만, 여론은 그렇게 검찰에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총선을 앞둔 아주 민감한 시점에 전·현 정권의 권력 핵심부를 수사하는 게 아주 이례적이기 때문입니다.
정치권과 검찰 안팎에서는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대검 중수부 폐지 얘기가 다시 나오는 것을 차단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대검 중수부는 엄청난 정치적 부담에도 검찰 개혁을 막고, 조직을 살리려고 수사에 나선 걸까요?
검찰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이상득 의원과 딸 정연씨에 대한 수사는 총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새누리당 이종혁 의원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이종혁 / 새누리당 의원
- "검찰은 19대 총선 민주통합당 예비후보자와 공천 확정자 중 문재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그리고 비례대표로 거명되는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등 친노그룹들과 청와대 근무경력자 등의 관련 비리가 이번 사건과 관계가 없는지 19대 총선이 시작되기 전에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이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부산진을에 출마했습니다.
자신이 공천을 받으려고, 또 부산에서는 친노 바람이 부는 것을 막으려고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요?
민주통합당은 이 수사가 부관참시, 그러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무덤에서 다시 꺼내 또 한 번 죽이는 일이라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민주통합당 김진표 원내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김진표 /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 "검찰이 내사종결 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은 노골적인 이명박 정권 편들기이고 불법적인 선거개입 행위이다. 노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지 3년도 지나지 않아 표적수사를 하는 것은 인면수심의 작태이다."
문재인 상임고문 측도 저급한 정치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검찰의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또 어디까지 갈지는 현재로서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 수사결과가 몰고 올 정치적 파장은 자칫 지금의 총선 구도와 대선구도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물론 이상득 의원과 딸 정연씨의 무죄가 입증된다면 그 후폭풍은 대검 중수부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점 또한 분명합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 김형오 / hokim@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