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렸던 제암·고주리 학살사건, 어제(27일) 보도해 드렸습니다만,
총칼에 힘없이 당했다고만 알려진 이 사건의 배경엔 놀랍게도 일본 순사까지 처단했던 지역민의 저항 정신이 숨어 있었습니다.
갈태웅 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마산리.
지금은 매립돼 갈대숲이 우거져 있지만, 20년 전만 해도 어선이 들어왔던 곳입니다.
이처럼 화성 지역은 구한말부터 간척사업이 활발했습니다.
화성엔 또 염전이 유명했습니다.
전국적인 특산품으로 소개될 정도였습니다.
일제는 이 간척사업과 염전, 풍부한 농수산물 등을 그냥 놔두지 않았습니다.
간척사업에 주민들을 혹독하게 동원했고, 소금과 쌀 등은 지역 항구와 역 등을 통해 마구잡이로 수탈했습니다.
▶ 스탠딩 : 갈태웅 / 기자
-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몇 곳 남지 않은 염전입니다. 일제강점기 시대, 이곳은 주요 소금 생산지였지만, 염세저항운동이 일어날 정도로 일제의 수탈과 횡포가 심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3·1 만세운동은 지역민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만세시위가 벌어졌고, 모였다 하면 수백 명에서 2천 명 이상이었습니다.
심지어 일본 주재소를 파괴하고, 일본 순사 2명까지 처단하기도 했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격렬했고, 공격적인 만세운동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 불길을 잠재우기 위해 일제는 한 달 보름 만에 제암·고주리 학살 사건이란 반인륜적인 만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 인터뷰 : 이동근 / 수원박물관 학예연구사
- "딱 한마디로 정의해서 말씀드리자면, 제암리 학살사건은 식민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민족적 민중해방운동의 정점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일제의 수탈이 극심했던 경기도 화성, 하지만 당시 우리 민족은 마냥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았던, 깨어 있는 정신의 선각자들이었습니다.
MBN뉴스 갈태웅입니다. [ tukal@m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