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1주년이 되는 해인데요.
전쟁의 아픔을 그 누구보다도 마음속 깊이 간직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국군포로'라고 합니다.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온 국군포로 어르신들을 이성훈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 기자 】
올해로 82살인 탈북 국군포로 유영복 할아버지.
유 할아버지는 11년 전 아버지와 상봉한 가슴 벅찬 그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너 50년 만에 만난 94살의 아버지는 유 할아버지가 지난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이었습니다.
▶ 인터뷰 : 유영복 / 6.25 국군포로가족회 회장
- "내가 먼저 죽었다면 아버지한테 불효자식이 되는 거 아니겠어. 아버지가 나한테 했던 말을 항상 명심하고 지냈지. 다행히 아버지가 살아계셔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52년 겁 없이 전장에 뛰어든 유 할아버지는 휴전을 한 달 앞두고 중공군에게 포로로 잡혔습니다.
이후 반세기의 포로 생활은 8할이 광산에서의 강제 노동으로 채워졌습니다.
24시간 감시받는 자유 없는 삶과 폐 속까지 파고드는 검은 석탄 가루.
결국, 유 할아버지는 목숨을 담보로 남녘 땅을 밟았고,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화랑무공훈장을 받는 영예로운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평택에 사는 한 모 할아버지도 50년 동안 함경남도에서 국군포로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괴뢰군'이라는 주홍글씨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은 꿈도 꾸지 못했던 할아버지에게 북쪽의 기억은 불안과 공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직도 힘들게 살아가고 있을 포로수용소 전우들의 이름을 떠올리면 가슴 한쪽이 아려옵니다.
▶ 인터뷰 : 한 모 씨 / 탈북 국군포로
- "(국군포로들이) 빨리 송환돼서 남은 인생이 얼마 안 되는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고…"
휴전협정을 맺고 58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북녘 땅에 머물 것으로 추정되는 국군포로는 수천 명.
이 가운데 제3국으로 탈북해 국내로 들어온 국군포로는 80명이 전부입니다.
이들의 가슴에 새겨진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서라도 국군포로 송환에 대한 정부의 책임 있는 대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MBN 뉴스 이성훈입니다. [sunghoon@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