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였던 1939년 서울 홍보 동영상이 있었다는 사실 아십니까?
일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당시 조선 총독부가 제작했는데요. 골프장에 경마장, 북적이는 명동까지 70여 년 전 우리네 모습 구경하시죠.
송찬욱 기자입니다.
【 기자 】
고층 아파트가 빼곡한 서울.
'경성'으로 불리던 1939년 일제강점기에는 기와집으로 가득했습니다.
부유층이 즐겨 찾던 골프장은 어린이대공원이 됐고, 많은 관람객이 모여들었던 창경원 동물원은 창경궁으로 제 모습을 찾았습니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의 오락거리였던 경마장은 풍물시장으로, 경성의 유일한 야구장 동대문운동장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로 탈바꿈했습니다.
많은 일본인들이 집단으로 살았던 혼마찌는 명동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최고의 번화가입니다.
▶ 스탠딩 : 송찬욱 / 기자
- "1939년 경성역으로 불렸던 서울역입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이곳 서울역은 한결같이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경성역에는 기차를 타려는 승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고, 흙먼지 날리는 광화문 앞에서는 시민들이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아이들의 등교는 경성의 아침이 밝았음을 알려주고, 출근길 전차는 사람들로 가득 찹니다.
분주한 주식거래 현장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시장에서 고무신을 파는 상인과 호떡집이 낯설지 않습니다.
▶ 인터뷰 : 박혜원 / 청계천문화관 연구원
- "이번 영상이 조선총독부 철도청에서 1939년도에 경성에 관광을 좀 더 증진시키기 위해 만든 홍보 영상이었는데, (일본과) 협의가 됨으로써 시민들에게 최초로 공개하게 됐습니다."
이번에 최초로 공개된 1939년 경성의 모습을 담은 영상과 사진은 오는 6월 26일까지 청계천문화관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MBN뉴스 송찬욱입니다. [ wugawuga@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