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어떤 남자가 아내와 마주앉은 채 밥을 먹으며 치마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간통을 의심하고는 때려죽였다. 살인 혐의로 옥에 갇혔지만 이내 풀려났다."
조선 정조(正祖) 재위 시절인 1787년 철산에 사는 서돌남이란 남성이 외간 남성을 때려죽이고도 풀려난 이야기다. 당시 재판부는 `치마를 당기거나 마주 앉아 밥을 먹는 행위`도 간통이라고 판단했다.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 연구교수가 정조 재위기인 1776년 1월부터 1800년 6월까지 사형에 해당하는 중범죄 사건 1112건에 대한 국왕의 심리기록을 모은 판례집인 `심리록(審理錄)` 중 성과 관련된 범죄 148건을 분석한 결과를 내놔 눈길을 끈다.
분석 결과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인문한국사업단이 7일 `정조대 국정 운영과 생활, 교류의 조감도를 그려본다`는 주제로 연 학술대회에서 발표됐다.
이 교수에 따르면 당시엔 간통 현장이 아니더라도 그것과 다름없다고 판단되는 상황이면 간통 현장으로 해석했다.
`몹쓸 짓`
정조는 "왕정의 급선무는 풍화(風化ㆍ풍속을 바로잡음)"라며 "퇴폐적인 풍조 속에서 교화에 의한 미풍을 이 여성에게서 본다"고 했다. 자살을 택할 경우 `정녀`로 칭송돼 포상받기도 했다.
[정석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