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자금을 대던 만석꾼의 손자가 재계 수장이 됐다. 제33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추대된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얘기다.
허 회장은 경남 진주 만석꾼으로 일제시대 한국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대고 진주여고를 설립한 고 효주(曉州) 허만정의 손자다. 고 허만정 씨는 가난한 소작농과 주민들에게 쌀을 나눠줬지만 공짜로 주지는 않았다. 대신 인근 방어산에서 돌을 가져오게 해 마당에 쌓게 했다. 지금도 허씨의 생가인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에 가면 `금강산`이란 이름으로 돌더미가 남아 있다. 광복 후 허만정 씨는 1947년 LG그룹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사 창업에 상당한 자금을 지원했다. 이런 인연으로 허만정 씨는 셋째아들인 고 허준구 씨를 LG그룹에서 경영수업을 받게 해달라고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회장에게 제의했다. 이후 허준구 씨는 LG그룹 주요 의사결정에 깊이 관여하면서 LG건설 명예회장까지 올라 지금의 GS그룹이 탄생한 기틀을 마련했다.
허만정 씨는 호암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이 삼성상회를 창업할 때 자금을 보탰고, 장남인 고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은 삼성 계열사에서 함께 일을 시작했다. 이처럼 허씨 집안은 한국 자본주의의 뿌리와 연결돼 있다.
허창수 회장은 허준구 명예회장이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회장 첫째 동생인 고 구철회 LG 고문의 장녀 구위숙 씨와 결혼해 낳은 장남이다. 따라서 고 효주 허만정-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허창수 GS그룹 회장은 3대를 이어가며 대한민국 산업 발전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아울러 허만정의 자녀들과 많은 손자들은 대부분 LG그룹에 입사해 지난 반세기가 넘게 LG그룹의 구씨 집안과 함께 지내면서 성장했다.
허창수 회장은 1995년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퇴임에 맞춰 구-허씨 양가의 창업 세대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남에 따라 허준구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LG전선 회장으로 선임됐다. 이어 2004년 GS그룹이 LG그룹에서 분리되면서 GS 회장으로 취임했다.
GS그룹의 든든한 후원군은 허창수 회장의 삼촌과 사촌형제들이다. 이들은 LG그룹에서 수십 년간 경영수업을 받으면서 내공을 쌓았으며 현재 GS그룹 주요 경영진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고 허만정의 넷째아들인 허신구 GS리테일 명예회장은 현재 집안에서 가장 큰 어른이다. 다섯째 아들인 허완구 승산 회장도 측면 지원해주고 있으며 그의 아들인 허용수 GS 전무는 그룹 지주회사의 사업지원팀장으로 기업 인수ㆍ합병(M&A)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고 허만정의 6남은 허승효 알토 회장, 7남은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 막내아들은 허승조 GS리테일 부회장 등이다.
허정구 씨는 1952년 제일제당에 전무로 경영에 참여했다가 1961년에 독립해서 삼양통상을 창업했다. 지금은 고 허정구 씨 첫째아들인 허남각 회장이 삼양통상을 물려받았다. 허정구 씨의 차남인 허동수 씨는 GS칼텍스 회장을 맡아 `지상유전`이라 불리는 고도화 설비를 국내 최고로 확충하는 등 공격 경영에 나서고 있다.
또 허정구 씨 셋째아들이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이며 그의 딸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아들과 결혼했다. 허광수 회장 아들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딸과 결혼하면서 자녀들이 모두 언론계와 인연을 맺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 친동생들도 그룹 핵심 경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허창수 회장의 동생인 허정수 씨는 GS네오텍 회장을 맡고 있다. 또 허진수 GS칼텍스 사장, 허명수 GS건설 사장, 허태수 GS샵 사장도 친형인 허창수 회장을 가까이서 보좌하고 있다. GS그룹은 2004년 에너지, 유통, 건설 분야를 갖고 LG그룹에서 분가했다. 허씨 집안은 창업 이래 57년간 별다른 잡음 없이 LG그룹 구씨 집안과 성공적으로 동업관계를 유지한 덕분에 큰 박수
이후 허창수 회장은 삼촌과 사촌들이 운영하던 회사들을 계열사로 줄줄이 편입하고 LG에너지, 쌍용 등을 M&A하면서 작년 말 기준으로 70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GS는 출범 당시 18조7000억원(2004년 말 기준)이던 자산 규모도 2009년 43조원으로 두 배 이상 늘렸다. 재계 7위에 해당된다.
[김대영 기자 / 강계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