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시내 중·고교에서 1점도 되지 않는 내신점수 때문에 학부모와 학교 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4일 서울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작년 12월 모 고교에서는 기말고사 영어성적 채점의 적정성을 두고 학부모와 학교가 `형사고발`도 불사하겠다며 옥신각신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갈등의 이유는 이랬다.
이 학교 1학년생 A군은 지난달 2학기 말 영어시험에서 95.7점을 받았지만, 내신등급은 전체 석차 21등으로 2등급에 머물렀다. 이 학교의 1등급 인원은 전교 20등까지로 A군은 2등급 중 1등이었다.
A군의 어머니는 1점도 안 되는 성적 차이로 등급이 밀린 것은 학교가 서술형 문제들의 정답을 정확하게 채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학교는 `어법상 적절하지 않은 것`을 고르는 문제에서 틀린 답까지 고른 학생에게도 만점을 줬고, 단어 쓰기 문제에서도 정답인 복수형을 단수형으로 적은 학생까지 만점을 매겨줬다는 것이다.
A군 모친은 "1등급과 2등급이 거의 영점 몇 점 차이로 결정되는 상황에서 학교가 엄정하게 채점하지 않아 완벽한 정답을 적은 우리 아들이 불이익을 봤다"며 학교에 항의했다.
학교는 영어교사들을 불러 논의한 끝에 채점의 문제점을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일부 성적을 수정했다. 그러나 단수형 답안에 만점을 준 부분은 고치지 않았다.
학교 관계자는 "그 정도는 (만점을 줘도) 괜찮다고 채점교사들이 판단한 것이고 성적관리위원회도 인정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성적을 정정했음에도 A군은 그대로 2등급이었다.
A군 모친은 이에 대해 "정정 폭이 이례적으로 작았다. 특히 단수형 답안에 여전히 만점을 준 것은 석차 순위를 유지하는 범위에서 시늉만 한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학부모와 학교의 갈등은 더 심각해져 A씨는 학교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학교는 A씨가 자주 교사들을 찾아와 채점 결과에 항의하자 `업무방해` 등을 거론하며 신경질적으로 대했다.
A군 어머니는 "비록 작은 점수지만 아이의 미래가 뒤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고, 학교 측은 오히려 "이제 1학년인 A군은 열심히 하면 어떤 대학이든 갈 수 있다. 이건 너무 하는 것 아니냐"며 하소연했다.
서울시내 한 중학교에서도 1~2점 정도의 영어성적을 둘러싼 갈등이 빚어졌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외고 진학을 목표로 공부해온 B양은 1~2학년 때 줄곧 영어시험에서 1~2등급을 받아오다가 3학년 2학기 말 시험에서 근소한 점수 차이로 3등급을 받았다.
B양 부모는 시험의 난이도에 문제를 제기했다. 2학기 기말고사에서 출제된 몇몇 문항이 외국에서 살다 온 학생들이 아니면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는 것이다.
이 학부모도 언론에 제보하거나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하는 방안을 고심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내신성적을 사이에 두고 학생·학부모와 학교 간 갈등은 외부로 좀처럼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 고교 관계자는 "영어시험에서 0.1~0.2점 차이로 등급이 뒤바뀌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니 출제와 채점의 적정성을 놓고 크고 작은 갈등이 시험을 볼 때마다 생긴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서울시내 모든 초·중·고교에서 `서술형 문항 30% 이상 출제`가 의무화되고 외고 입시에서는 영어성적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면서 성적을 둘러싼 학부모와 학교의 충돌 양상이 더 첨예화되고 있다는 것.
이런 극단적인 성적 대립을 바라보는 교육계의 시선은 엇갈린다.
한 장학사는 "시험문항이 지나치게 어렵거나 엄정하게 채점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억울한 노릇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한 반면, 또다른 장학사는 "성적이 뒤바뀌면 더 큰 민원이 발생한다. 학교의 재량권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내에서 벌어지는 성적 갈등은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서울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성적을 둘러싼 학생, 학부모와 학교 간 갈등은 지금과 같은 입시경쟁 속에서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며 "학생과 학부모, 학교도 모두 피해자일 뿐"이라고 말했다.
[뉴스속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