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에서도 '이낙연 신당 창당' 두고 연판장 논란
과거 민중들 의견 피력 수단이던 '연판장'
여의도에서 정적 견제 수단으로 변질
↑ 지난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미래를 위한 약속, 공정 경선 서약식'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왼쪽부터), 윤상현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나경원 의원이 박수치고 있다 / 사진 = 연합뉴스 |
오는 23일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2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연판장(連判狀)으로 전당대회가 혼란스럽습니다.
이른바 '김건희 여사 문자 무시' 관련 의혹이 한동훈 당 대표 후보에 대한 사퇴 요구로까지 번지는 듯한 모습이 나왔습니다. 일부 원외 인사들이 한 후보 사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예고했다가 '제 2 연판장' 논란에 결국 취소한 겁니다.
왜 '제 2 연판장' 논란일까요? 연판장은 여러 사람이 이름을 잇달아 서명하거나 도장을 찍은 문서입니다. 지난해 3·8 전당대회 당시에도 당 대표 자리에 도전장을 내민 나경원 의원은 친윤계 초선 의원 53명의 사퇴 연판장 공세를 겪으면서 결국 불출마 결정을 내린 바 있는데 지금도 이와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돼 '제 2 연판장'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 연판장이 논란이 된 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국민의힘에서 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총선 직전 친명계 의원들이 당시 유력한 경쟁 후보였던 이낙연 전 대표의 신당 창당을 반대하는 연판장을 만들었습니다. 당시엔 연판장에 참여했는지 여부 자체가 이재명 대표로부터 총선 공천을 받을 수 있는지 등을 결정한다며 줄 세우기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여의도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연판장은 언제부터 사용돼왔을까요? 과거 어떤 역할을 했고, 지금은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요?
챗GPT 4o(포오)는 "연판장은 주로 공동의 목표나 요구를 위해 집단적인 의사를 표현할 때 사용됐다"며 "조선시대에는 주로 지식인들이 공동의 의견을 표명하거나 왕에게 상소를 올릴 때 사용됐고, 일제강점기에는 독립 운동가들이 독립 의지를 표명하고 독립 운동을 전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서양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고대 로마와 그리스에서 공동체 의견을 표명하기 위해 연판장과 비슷한 문서가 사용됐고, 영국 명예혁명과 미국 독립운동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연판장을 통해 공동의 의견을 표명하고 정치적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도 연판장은 꾸준히 등장합니다. 앞서 언급된 대로 일제강점기 당시 연판장은 독립 선언서, 광주 학생 항일 운동 등에서 독립 의지를 결집하고 표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1960년 4·19 혁명 이후엔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와 군대 내 부패 문제를 지적해 주요 군 실세들을 물러나게 하려는 목적으로 연판장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 사진 = 연합뉴스 |
대체로 상대적 약자인 민중들 입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권력에 맞서는 수단으로 사용된 건데, 현재는 오히려 권력을 가진 자 측에서 사용되거나 정적 견제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챗GPT는 "최근 한국 정치에서 연판장은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적 세력을 견제하거나 압박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당 내 권력 다툼에서 특정 계파가 다른 계파를 견제하거나 약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치적 의견 피력이 아닌 권력 싸움의 일환으로 사용 목적이 변질됐다는 겁니다.
여당의 연판장 논란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한동훈 후보는 일부 원외 인사들이 다른 당협위원장들에게 연락해 한 후보 사퇴 회견에 동참할지 물은 것
[윤혜주 디지털뉴스 기자 heyjude@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