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전환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이준석 대표가 낸 가처분신청을 법원이 사실상 받아들이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이 비대위를 둘 정도로 비상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주호영 비대위원장의 직무를 정지시켜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국민의힘이 25~26일 이틀간 연찬회를 마친 뒤 당내 혼란에 대해 사과하고 '민생 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한 날, 공교롭게도 법원발 초대형 날벼락이 내려진 것이다.
하지만 법원이 정당 내부의 의사 결정과 인선, 다툼을 정치적 해결에 맡기기보다 직접 법률적 판단을 내린 것은 자칫 '정치의 사법화'로 비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국민의힘도 "법원의 가처분 인용결정은 정당 내부의 자율적 의사결정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며 이의신청을 제기한 상태다.
반면 이준석 대표측은 "헌법 파괴 행위에 내린 역사적 판결"이라며 "주호영 비대위원장의 직무를 정지하고 당헌에 따라 최고위원을 선출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국민의힘 당헌 96조1항은 '당 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 기능이 상실되는 등 당에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 안정적인 당 운영과 비상상황의 해소를 위해 비상대책위원회를 둘 수 있다'고 돼 있다.
하지만 이 대표측은 해당 규정에 따른 비상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자신에 대한 당원권 6개월 정지 징계는 당 사무처에서도 궐위가 아니라 '사고'로 결론지었고 사퇴를 선언했던 배현진 윤영석 최고위원 등이 그대로 이달 2일 표결에 참여한 만큼 최고위 기능 또한 상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측은 "당 대표 2년 임기 중 6개월 정지는 '궐위'에 준하는 상황으로 봐야 하고 최고위도 구성원 9명중 일찍 사퇴한 김재원 최고위원 외에도 배현진 조수진 윤영석 정미경 최고위원 등이 차례로 사퇴해 '4인 이하'가 된 만큼 기능이 상실됐다"고 주장한다.
특히 선출직 최고위원이 거의 동시에 사퇴한 상황에서 후임자를 선출할 지, 아니면 비상상황으로 간주해 비대위를 둘 것인지는 정당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사항이라는 게 국민의힘측 입장이다.
법원은 이 중 이 대표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 사건 경위를 살펴보면 당 기구의 기능 상실을 가져올 만한 외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고 하기보다는 일부 최고위원들이 당 대표 및 최고위원회의 등 국민의힘 지도체제의 전환을 위해 비상 상황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는 지도체제를 구성에 참여한 당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정당민주주의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특히 "전국위 의결 중 비대위원장 결의 부분은 당헌에 위배되고 정당의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한 헌법, 민주적인 내부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당원 총의를 반영할 수 있는 대의기관 및 집행기관을 가져야 한다는 정당법에도 위배되므로 무효"라고 적시했다.
한마디로, 국민의힘이 이 대표를 몰아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비상상황을 만든 만큼 주호영 비대위원장 체제를 인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번 결정을 내린 재판장은 황정수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 수석부장판사(사시 38회·연수원 28기)다.
법원내 '원칙론자'로 불리는 황 부장판사는 정치적 사안이라도 문제가 있다면 사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6·1 지방선거 당시 무소속 강용석 경기지사 후보의 신청을 받아들여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양당 후보만 참여하는 TV토론을 금지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인천 강화군수와 충남 태안군수 등의 예비후보들이 지방선거 공천 결과에 반발하며 낸 효력정지가처분도 받아들여 국민의힘 결정을 뒤집기도 했다.
하지만 정당 내부의 의견 대립이나 정치 행위에 대해 사법부가 직접 판단하는 것은 되도록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 많은 법조계 인사들의 견해다.
정치와 사법은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는 의미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치가 사법을 무시해 법치주의 원칙이 무너져서도 안되지만 지나치게 사법부에 의존해 '법관통치'(Juristocracy)시대를 여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법관의 법률적 판단보다는 정당 당원들의 총의와 국민 여론을 모아 현안을 슬기롭게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더구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명수 사법부' 체제에서 법원이 특정 정파에 대한 정치적 결정을 내리게 되면 자칫 오해와 억측을 부를 소지도 크다.
국민의힘 주호영 비대위원장이 법원 결정 후 "재판장이 특정 연구모임 출신으로 편향성이 있고 이상한 결과가 있을 거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그 우려가 현실화된 것 같다"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보인다.
법원이 아무리 '헌법 테두리'와 '법적 규제'를 강조해 결정을 내려도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라는 논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셈이다.
법원의 이
국민의힘과 이 전 대표는 이제라도 넌더리나는 집안싸움과 볼썽사나운 감정싸움을 멈추고 파국을 헤쳐나가기 위한 정치적 노력에 나서야 할 것이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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