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이 윤석열 정부의 초대 국무조정실장(장관급)에 내정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정간 불협화음이 커지고 있다.
윤 행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인사다.
특히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부동산정책 등 문 정부가 실패한 주요 경제정책에 관여한 총괄 책임자다.
국무조정실은 국무총리를 보좌하고 중앙행정기관의 지휘-감독, 정책 조정을 맡는 막중한 자리다.
이 때문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윤 행장을 국무조정실장에 임명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을 수용·인정하는 꼴"이라며 연일 '불가론'을 외치고 있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 25일 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이같은 반대의견을 전달했다.
그는 26일에는 "윤 행장과 함께 일한 경제관료 대부분이 (인선을) 반대하고 있다"며 "너무 독선적이고 아랫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각 부처 현안을 통합하는 국무조정실장에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다"라고 혹평했다.
그는 또 "윤 행장은 고위 공직자로서 자세에 흠결이 많고 태도도 좋지 않다"며 "제가 여쭤본 당 의원들 100%가 반대하는 인사를 왜 기용하려 하는지, 왜 고집 피우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27일에는 "당의 입장을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전달했기 때문에 두 분이 숙의 끝에 현명한 결정을 하리라 믿는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반면 '윤종원 카드'를 추천한 한 총리는 "지금 단계는 인사검증이 아직 안 끝난 상태"라며 맞서고 있다.
한 총리는 여당이 제기한 비판적 목소리에 대해선 "우선 순위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며 " 최종적으로 인사권자가 판단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 총리는 윤 행장이 문 정부 시절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소득주도정책이 그분이 오면서 포용적 성장이라는 정책으로 바뀌었다"며 "(윤 행장은) 기재부 경제정책국장부터 시작해 경제비서관으로서 박근혜 대통령 때도 일했다. IMF에선 가장 유능한 이사 중 하나였고 이사를 하면서 페이퍼를 썼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처럼 윤 행장 인선을 놓고 당정간 파열음이 계속되면서 윤 대통령의 고심도 길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한 총리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여당이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하자 조금 더 시간을 두고 판단하려는 듯한 분위기다.
다만, 대통령실 내부에선 "국무조정실장 인선은 국무총리가 할 일이다. 그것이 대통령이 책임총리제를 약속한 취지"라며 당의 방침과는 다소 거리를 두는 기류도 감지된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지난 26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총리 중심으로 국무위원들이 원팀이 돼 달라"며 한 총리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시중에선 "윤 행장을 새 정부의 첫 국무조정실장에 기용하는 것은 국민의 뜻에 반하는 인사"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윤 행장은 경험과 도덕성 여부를 떠나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명난 문 정부의 경제정책을 주도한 당사자다.
윤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신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문 정부의 경제 실정으로 삶이 벼랑 끝에 내몰린 국민들이 대거 문 정권에 등을 돌린 결과다.
게다가 윤 행장은 청와대 경제수석시절 경제 실패 등의 책임을 지고 1년 만에 경질된 뒤 반년도 안돼 시중은행장 자리를 꿰찬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전임 정부의 경제 실패에 우선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인사를 중용해 국정을 조정하는 중책을 맡긴다는 것은 다수 국민을 우습게 보는 행태나 다름없다.
윤 행장이 발탁될 경우 새 정부의 국정운영과 정책 기조에도 혼선과 차질이 빚어지고, 공직사회 분위기도 어수선해질 게 뻔하다.
일각에선 자신의 정적을 내각에 중용한 에이브라험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의 포용적 리더십을 들먹이고 있지만 이번과는 상황이 다르다.
링컨이 당시 참모들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에드윈 스탠튼 민주당 중진을 전시국방장관(Secretary of War)에 임명한 것은 그가 애국심이 투철하고 군대를 관리할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탠턴은 링컨 제의를 받고 처음엔 내켜하지 않다가 "오직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수락했다.
이후 스탠턴이 이끈 북군은 남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스탠턴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시국방장관 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제라도 윤 행장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올바른 처신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물론 미국 사회조직가 솔 알린스키 지적처럼,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를 위해선 어느 정도의 타협과 절충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만약 윤 대통령이 '책임총리제' 약속을 지키고 통합의 정치를 위해 윤 행장의 임명을 강행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선행돼야 할 조건이 있다.
그것은 윤 행장이 문 정부 경제실패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국민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또 '영혼없는 공무원'처럼 정권에 상관없이
그런 통렬한 자기 성찰과 변화의 노력도 없이 윤 정부에 무임승차하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몰염치한 행태가 아니겠나.
[박정철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