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은 역사적 정당성 확보"
"검찰, 사법정의 언급하려면 공식 사과해야"
더불어민주당과 박병선 국회의장이 임시국회 회기를 28일 0시로 설정하면서, 국민의힘이 신청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자정 부로 강제 종료된 가운데 발언자로 대기하던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연단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용 의원은 SNS를 통해 필리버스터 원고를 공유했습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27일 밤 늦게 "'필리버스터'에 어울리지는 않게 짧은 발언을 준비했지만 민주당 2명, 국민의힘 3명에 이어 6번째 순서로 배정 받아 아무래도 저에게 발언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발언문을 먼저 공유한다"며 A4 용지 2장 분량에 이르는 원고를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했습니다.
27일 오후 5시에 시작된 본회의에서 검찰청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는 총 6시간 48분 동안 진행됐습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첫 주자로 나서 2시간 3분 간 토론을 했고, 이후 김종민 민주당 의원이 1시간 15분,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2시간 51분,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37분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27일 밤 11시 59분에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 순서지만 12시에 (임시회가) 종료된다. 1분 (발언) 하실 거면 나오시고 아니면 1분 있다가 회의를 마칠 예정"이라고 말했고, 김 의원이 걸어 나올 때 자정이 되면서 임시회는 종료됐습니다.
이에 따라 김 의원 뿐만 아니라 김 의원 순서 바로 뒤였던 용 의원도 연단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용 의원은 준비한 발언문을 통해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의 의사 진행을 방해할 생각이 없다"면서도 "그러나 불과 며칠 사이에 국회가 우스워지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자신들이 합의하고 추인한 결정을 자신들이 뒤집으면서도 '입법독주'라고 비난하는 지금의 이 코미니가 국회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검찰개혁은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했다"고 강조하면서 "검찰개혁의 방법론적 핵심은 검찰로 집중된 권력의 적절한 분산"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검수완박'이라는 표현처럼 검찰은 수사에서 완전히 배제되지 않는다"며 "검찰은 현재 경찰보다 수사 역량이 더 우수한 중대 경제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여전히 보유한다. 그리고 '동일한 사건'이라는 한계 안에서 경찰의 수사에 대한 보완수사권도 행사할 수 있다"고 첨언했습니다.
아울러 "경찰도 검찰이 보유한 그 권한 자원, 인력 자원을 갖춘다면 검찰 못지 않게 수사를 잘 할 수 있다"며 "금융 부패나 권력층 수사에서 검찰이 경찰보다 수사를 더 잘 한다는 세간의 평가는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용 의원은 "검찰이 정말 사법 정의에 대한 사명감으로 국회의 수사권 분리 법 개정에 반대한다는 말을 국민들이 믿을 수 있으려면, 최소한 수많은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했던 공안사건들에 검찰이 적극 가담했던 역사, 정치권력과 결탁해 눈감았던 김학의 성폭력 사건, 검찰이 스스로 움직였던 고발사주 사건 등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습니다.
존경하는 박병석 국회의장님과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밤낮없이 애쓰시는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 기본소득당 국회의원 용혜인입니다. 필리버스터,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죠.
저는 검찰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의사진행을 방해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불과 며칠 사이에 국회가 우스워지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합의하고 추인한 결정을 자신들이 뒤집으면서도 '입법독주'라고 비난하는 지금의 이 코미디가 국회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국회 회의 기록은 역사에 남는 기록입니다. 2022년 4월 27일, 오늘의 기록을 그저 우스운 상황으로만 남길 수는 없어 검찰개혁에 대한 제 의견을 남기고자 발언대에 올랐습니다.
저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의 수립 과정에서 검찰개혁이 하나의 시대정신이자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했다고 굳게 믿습니다. 김기춘, 우병우라는 이름은 검찰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이름이었습니다. 왜 이런 검사들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승승장구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는가?
이렇게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한 검찰개혁의 방법론적 핵심은 검찰로 집중된 권력의 적절한 분산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법안의 내용과 효과에 대한 합리적인 우려나 비판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법안을 검토해보았습니다. ‘검수완박’이라는 표현처럼 검찰은 과연 수사에서 완전히 배제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검찰은 현재 경찰보다 수사 역량이 더 우수한 중대 경제 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여전히 보유합니다. 그리고 ‘동일한 사건’이라는 한계 안에서 경찰의 수사에 대한 보완수사권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경찰로 갑자기 수사 권한이 집중되면 경찰에 대한 견제는 어떻게 하느냐? 이 부분은 앞으로도 계속되는 숙제로 남겠지만, 적어도 법안에서는 경찰의 범죄행위에 대한 수사권은 여전히 검찰이 보유하도록 함으로써 경찰도 검찰의 견제를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번 검경 수사권 분리 법안에 대한 여러 비판에는 경찰에게 수사 주도권을 넘겨주면 힘 있는 사람들, 국회의원들, 권력층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와 기소가 안 돼서 사법 정의가 후퇴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경찰과 검사가 각각 수사와 기소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게 되면 기득권의 부정부패에 대한 수사가 후퇴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포털 사이트 검색만 해도 줄줄이 나오는 논문들 몇 개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는 국가들에서 수사와 기소의 역할이 어떻게 분리되어 있는지 말입니다. 큰 틀에서 미국과 영국은 경찰이 수사를 검찰이 기소를 전담하는 구조입니다. 반면 유럽의 대륙 국가들에서는 대체로 검찰이 수사권과 수사지휘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 하나는 이렇게 검찰이 수사권을 보유하더라도 수사의 실질적 주체가 경찰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경찰이 수사 권한을 주도적으로 행사하는 이들 선진 국가들에서 기득권층의 부정부패에 대한 수사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검찰의 수사권을 현행대로 유지해줘야만 기득권층의 부패를 제대로 수사할 수 있다는 주장은 어떤 논거일까요?
금융 부패나 권력층 수사에서 검찰이 경찰보다 수사를 더 잘 한다는 세간의 평가는 진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영장 발부, 타 국가기관에 대한 정보 접근권 등에서 검찰은 경찰에 비할 바 없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밀도 높은 권한에 더해 오래도록 경험과 전문 인력을 축적하고 있습니다. 경찰도 검찰이 보유한 그 권한 자원, 인력 자원을 갖춘다면 검찰 못지 않게 수사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검경 수사-기소 분리 법안을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의약분업에 비교하고 싶습니다. 당시 의약분업이 이뤄지면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 붕괴할 것처럼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하지만 이제 돌이켜보면 의사와 약사가 주어진 고유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은 한 단계 발전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공공성을 명분으로 삼아 이뤄지는 극렬한 찬반의 논리 뒤에는 특정 권력집단에게 주어진 권한/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기득권의 완고함이 있습니다.
검찰이 정말 사법 정의에 대한 사명감으로 국회의 수사권 분리 법 개정에 반대한다는 말을 국민들이 믿을 수 있으려면, 최소한 수많은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했던 공안사건들에 검찰이 적극 가담했던 역사, 정치권력과 결탁해 눈감았던 김학의 성폭력 사건, 검찰이 스스로 움직였던 고발사주 사건 등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랜저 검사, 스폰서 검사, 벤츠 검사라는 용어가 회자됐던 검찰 조직 내부의 비리부패사건들에서, 외부의 감시와 압력 때문이 아닌, 검찰 조직 스스로의 윤리의식과 정의감으로 내부 비리검찰에 대한 사법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까?
검찰이 수사권, 수사지휘권, 영장청구권, 기소권, 기소유지권, 기소재량권을 모두 독점해왔던 반세기가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우리나라는 사법 정의가 구현되는 나라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검찰이 사법 정의가 아니라 사법 부정의의 공모자가 된 가장 큰 원인이 검찰로 집중된 권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저는 수사권만을 다시 조정한 이번 법안이 검찰개혁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재 검찰 조직에게 집중된 기소권 역시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맞는 재조정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법안 발의를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에게도 쓴소리 한 번 드립니다. 촛불항쟁을 통해 확보한 검찰개혁의 정당성을 정파적 이해에 대한 고려로 소진시켜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 법안이 최종적으로 공표에 이르든 그렇지 못하든, 민주당이 집권당에 있든 야당 위치에 있든 역사적 과제에
아울러 이 법안을 끝으로 검찰개혁이 끝이 아니라는 점도 말씀드립니다. 개혁 법안들에 늘 따라다니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기민하고 정성스러운 반응이 필요합니다.
이상 발언을 마칩니다.
2022년 4월 27일
기본소득당 국회의원
용 혜 인
[윤혜주 디지털뉴스 기자 heyjude@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