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로빈 던바의 책 '프렌즈'에 따르면 우정, 즉 친구 관계를 유지하려면 두 가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는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이고 다른 하나는 '우세 반응(Prepotent response) 금지'다. 마음 이론은 다른 사람이 지금 어떤 마음인지 읽을 수 있는 능력이다. 상대가 나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세상을 달리 해석할 수 있다는 걸 아는 능력이다. 우세 반응 금지는 내가 갖고 있는 우세한 힘과 권력으로 상대를 누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 두 가지를 할 수 없다면 친구를 사귈 수 없다는 건 자명하다. 상대의 마음을 모른다면 상대를 배려할 수 없다. 상대가 나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걸 모른다면 상대를 인정할 수 없다. 우세 반응을 억제하지 못한다면 상대에게 부당한 걸 요구할 것이다. 상대를 부하 취급하게 될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상대를 이용하지 않을 때 우정은 유지된다.
윤석열 당선인과 더불어민주당 간에 협치의 조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협치는 상대를 적으로 보면 불가능한 일이다. 적은 힘으로 눌러야 하는 대상이다. 나와 다른 믿음을 갖고 있다는 건 제거의 명분이 된다. 결국 협치가 되려면 상대를 친구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상대의 마음을 읽고 배려해야 한다. 내가 상대보다 힘이 세다고, 그 힘으로 상대를 억누르지 않아야 한다.
지금 정권을 잃은 민주당은 어떤 마음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보기에 그들은 두려움에 빠져 있다. 업보 때문일 수도 있다. 민주당은 집권 후 검찰 수사를 칼로 썼다. 적폐 청산을 명분으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수사했다.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다. 이제 야당이 되었으니 검찰이라는 칼을 완전히 잃게 됐다. 그 칼은 윤석열 당선인이 쥐게 됐다. 더욱이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 출신이다. 전직 대통령 수사를 해 본 사람이다. 민주당은 윤 당선인이 그 칼을 휘두를까 겁을 내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국회 다수 의석이라는 힘으로 윤 당선인을 눌러 '검수완박(검찰수사 완전 박탈)'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내 눈에 민주당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우세 반응'에 빠져드는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이 협치를 원한다면 그 두려움을 읽을 필요가 있다. 물론 윤 당선인은 정치 보복은 절대로 없다고 약속했다. 그 마음이 진심이라면 지금 민주당의 검수완박 주장에 어이가 없을 것이다.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친구가 되려면 마음속 선의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선의가 진심임을 인식시켜야 한다. 그래서 검찰 수사라는 칼을 휘둘려 민주당을 억누르는 '우세 반응'은 없을 것임을, 전 정권 적폐 청산의 악순환을 끊고 통합과 협치를 이룰 것임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선거에서 승리해 대통령 자리에 오른 승자가 먼저 손을 내밀어 관용의 미덕을 보여주면 아름다울 것이다.
그러나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지명은 안타깝게도 그 반대의 효과를 내고 있는 거 같다. 한 후보자는 민주당 정권의 핵심이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수사한 사람이다. 그 일로 민주당 정권에 미운 털이 박힌 사람이다. 민주당 정권에서 수차례 좌천도 됐다.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으로 2년간 수사까지 받았다. 당사자는 진심으로 억울할 것이다. 그를 아꼈던 윤 당선인 역시 마음의 빚이 있을 것이다. 그를 복권시켜 걸맞은 자리를 주는 게 정의이며 공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후보자 지명은 민주당의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냈다. 그들이 좌천시키고 수사까지 했던 사람을 법무부 장관에 앉힌 셈이다. 새 정권이 수사의 칼날을 민주당에 겨눌 것이라는 두려움이 더 커졌을 것이다. 물론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민주당의 자업자득이라고 할 것이다. 전 정권 적폐 수사를 하고, 조국 전 장관을 수사한 검사를 괴롭힌 대가를 민주당이 치르는 게 옳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과 협치 중에 어느 쪽이 나라에 득이 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만약 후자라고 한다면 한 후보자 지명은 잘한 인사라고 보기 힘들 것이다. 한 후보자 개인에게는 억울하고,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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