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도시 부차서 러시아군 탱크에 짓밟힌 차량 모습. 본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 = 연합뉴스] |
9일(현지시간) BBC는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니히우를 떠나는 대피 행렬에서 만난 빅토리아 코발렌코와의 인터뷰 내용을 전했다.
코발렌코에 따르면 전쟁 초기였던 지난달 5일 그녀는 남편 페트로와 큰딸 베로니카(12살), 작은딸 바바라(1살)와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 그러던 중 길이 돌들에 가로막혔고, 남편은 차를 세우고 돌을 치우기 시작했다. 몇 초 뒤 차량은 러시아군 공격을 받아 불길에 휩싸였다.
코발렌코는 그 당시를 떠올리며 "폭발이나 총격 같은 게 있었다. 곧 귀가 먹먹해졌고 차량 뒷유리는 산산조각이 났다. 남편은 차에서 내리라고 소리쳤다"고 말했다. 유리의 파편에 베여 피가 흔건한 내 머리를 보자 큰딸 베로니카가 울기 시작했다. 그는 "딸이 비명을 지르고 손을 떨자 진정시키려 차 밖으로 나가던 중 내 눈앞에서 딸이 쓰러졌다. 베로니카 머리가 날아갔다"고 흐느끼며 말했다. 돌을 치우던 남편도 보이질 않았다.
그러나 코발렌코에게는 이를 살필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안고 있던 작은 딸아이라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코발렌코는 작은딸을 안고 필사적으로 현장을 벗어나 길에 세워져 있던 다른 차량으로 피신했다. 러시아의 포격은 계속됐고 근처 건물 안으로 달려가 몸을 숨겼다.
큰딸과 남편을 잃은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다음날 다시 길을 나선 모녀는 순찰하던 러시아군에 붙잡혀 야히드네의 한 학교로 끌려갔다. 이후 지하에서 약 24시간 동안 억류됐다. 당시 같은 공간에 40명이 갇혀있었다.
빛도 없어 초를 사용하거나 라이터를 사용했고 덥고 먼지가 많아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화장실 가려고 나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아 내부에 있는 양동이을 써야 했다. 필요한 의료 지원을 받지 못한 몇몇 사람들은 사망하기도 했다.
코발렌코는 러시아 군인들한테 남편과 딸의 시신을 묻을 수 있게 학교로 가져와달라고 부탁했고, 숨진 큰딸의 아빠인 전남편에게는 사고 현장으로 가서 시신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사진을 본 코발렌코는 큰 충격을 받았다. 시신 상태가 사람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차량은 이미 전소돼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사건 발생 일주일이 지난 지난달 12일 시신이 도착했다. 코발렌코는 "그날 러시아군인이 나를 불러 가족들이 묻힐 곳을 보여주겠다며 따라오라고 했다"고 했다. 도착한 숲속에는 큰 상자 하나와 그보다 작은 상자 하나가 땅에 놓여있었다.
코발렌코는 "우린 상자들을 흙으로 덮기 시작했는데 공격이 다시 시작됐다"며 "그래서 다 묻기도 전에 다시 도망
코발렌코와 작은딸은 이후 서부 르비우로 대피했고, 최근에 심리 치료를 시작했다.
코발렌코는 가족에게 이런 짓을 한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푸틴을 총으로 쏠 기회가 생긴다면 반드시 죽이겠다"며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다.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