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9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현 정권의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대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겸허히 수용하기보다 오히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는 분위기만 가득하다.
선거에서 몇 %포인트 차이든, 일단 졌으면 한발 뒤로 물러서 성찰과 참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정상이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다.
하지만 현 정권에선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선 패배 책임을 통감하고 다음날 대표직을 사퇴했던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6·1 지방선거 서울시장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송 전 대표는 1일 페이스북에서 "오직 지방선거의 승리를 위해 당원으로서 직책과 직분을 가리지 않고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86운동권세대의 맏형격으로 대선 과정에서 정치개혁을 외치며 2선 후퇴를 선언한 채 몇 달도 안돼 다시 서울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것은 국민과의 약속을 뒤집는 처사나 다름없다.
민주당이 친문세력의 핵심인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를 꾸린 것도 같은 연장선이다.
윤 위원장은 국회 법사위원장과 원내대표 시절 검찰을 통제하고 무력화하기 위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과 검경수사권 조정 등의 통과를 주도했다.
야당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임대차 3법을 비롯한 부동산 관련법안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석패한 것도 이런 입법 독주에 따른 민심 이반 탓이 크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다시 윤 위원장에게 중책을 맡긴 것은 대선 패배에 따른 자성보다 앞으로도 입법 폭주를 계속 하겠다는 오만한 태도로 비칠 수 있다.
실제로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지난달 25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본부장'(본인-부인-장모)을 겨냥해 윤석열 특검법을 발의했다.
대장동 비리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이재명 전 민주당 후보는 정작 제쳐둔 채 윤 당선자 가족을 둘러싼 비리 의혹만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이 이처럼 아직도 독선과 아집, 진영논리에 갇혀 새 정부 발목만 잡으려 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검찰과 언론을 탓하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과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꺼내든 것도 낯 부끄러운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민주당 3선 의원인 박범계 법무부장관의 행태도 볼썽사납다.
박 장관은 대장동의혹과 관련해 지난달 30일 '국회 입법과 상관없이 법무장관 직권으로 상설특검을 가동할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검토하겠다"고 했다.
현행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1항2호에 따르면 법무장관은 이해관계 충돌이나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별검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특검을 개시할 수 있다.
한마디로 윤석열 당선인을 겨냥해 정권 입맛에 맞는 특검을 임명해 수사를 주도하겠다는 속셈을 내비친 것이다.
법과 정의를 앞장서 실현해야 할 법무장관이 이처럼 정략적인 꼼수에 매달리고 있으니 지탄이 쏟아지는 것 아닌가
현 정권은 청와대 특수활동비와 문재인 대통령 부인인 김정숙 여사의 옷값 등 의전비용 논란을 놓고도 국민의힘과 언론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윤호중 비대위원장은 1일 "국민의힘과 일부 보수언론이 문재인 대통령 내외를 향한 터무니없는 가짜뉴스로 중상모략을 일삼고 있다"며 "어떻게든 대통령 내외의 도덕성을 흠집내 국민의 시선을 돌리고 위기를 모면하겠다는 술수"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불거진 것은 무엇보다 청와대가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항소하면서 세부내역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국민적 의구심을 키웠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지난달 31일 "김 여사 옷값의혹 제기가 억울하다"며 특수활동비(연평균 96억원) 규모를 공개했지만 정작 국민이 궁금해하는 특활비 세부 내역은 빠졌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특수활동비를 공개할 수 없느냐'는 기자들 물음에 "될 수 있으면 저희도 공개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면서도 "(법률상) 비공개로 돼 있는 것을 저희에게 공개하라고 하는 것은 위법을 하라는 얘기와 똑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문 대통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청와대 특활비는 투명하게 집행되고 공개돼야 한다"며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서 제대로 감독돼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만약 문 대통령이 정권 출범 후 특활비를 투명하게 공개할 의향이 있었다면, 국회에서 172석을 가진 민주당을 통해 관련법을 얼마든지 개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법을 손질하는 노력은 하지도 않은 채 법을 핑계대고 있으니 의아할 뿐이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에서 "공적 권력을 갖게 된 사람들은 자신을 정의로 간주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쉽다"며 "윤리와 염치가 실종되고 개혁이 타락하는 것도 그런 착각에서 연유한다"고 했다.
이제라도 정권은 관행처럼 굳어진 '내로남불'과 '남탓'에서 벗어나, 민심이 떠난 원인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국민들 기대에 부응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대선 패배에 비분강개할 것이 아니라 다음 선거를 위해서라도 겸허한 자세로 반성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당내 소신파인 박용진·조응천 의원이 "5년 만에 정권을 다시 뺏긴 엄청난 실패, 중상을 입었는데 그만큼 아
그렇지 않으면 이낙연 전 총괄선대위원장이 선대위 해단식에서 일갈한 것처럼, 민주당은 완연한 봄인데도 다시 혹독한 겨울을 맞을 수도 있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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