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투표 이튿날인 10일 새벽, 자택에서 나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태운 차가 여의도 민주당 당사 근처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TV에서 그 장면을 보던 나는 이 후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억울한 마음에 누군가를 탓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인지상정이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하느님 앞에 불려갔을 때 제일 먼저 한 게 남을 탓한 거였다. 이브는 뱀을, 아담은 이브를 탓했다.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보더라도 제 눈의 들보는 못 보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이 후보가 자신을 공격한 이들을 탓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해도 이상한 게 아니다. 인간적이다.
그러나 그 순간 덜컥 겁이 났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기억나서였다. 그는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게 졌다. 하지만 승복을 하지 않았다. 부정 선거로 억울하게 졌다는 메시지를 계속 던졌다. 급기야 지난해 1월 6일 대형 사건이 터졌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사당에 난입하는 테러를 저질렀다. 이를 막던 경찰 중 한 명은 목숨을 잃었다.
한국의 이번 대선은 표 차이가 겨우 24만 표였다. 0.73% 포인트 차이에 불과했다. 국민 분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하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다. 강경파들은 상대를 악마화한다. 악마에게 졌다는 사실 자체도 인정하기 어려운데 표 차가 겨우 0.73% 포인트 차이라니, 극렬 강성 지지자들은 더욱더 결과에 승복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자칫 이 후보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재검표를 요구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 대한 마타도어와 흑색선전, 비방 자체가 부정선거의 증거라고 주장하지는 않을까 하고 겁이 났다. 남을 탓하는 억울한 마음에 굴복하면 그럴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치명적 위기에 빠질 것이다.
다행이었다. 내 걱정은 기우였다. 이 후보는 트럼프보다 훨씬 나은 인물이라는 걸 입증했다. 그는 당사에 도착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건 다 저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패배도, 민주당의 패배도 아닙니다. 모든 책임은 오롯이 저에게 있습니다. 윤석열 후보님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당선인께서 분열과 갈등을 넘어 통합과 화합의 시대를 열어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통합의 출발점은 패자의 승복이다. 승복이 없다면 승자와 패자는 계속 싸우게 된다. 승자는 힘으로 패자를 누르게 된다. 그러나 이번 선거처럼 표 차가 미미할 때에는 승자의 힘 역시 제한된다. 게다가 이 후보 표에 진보 성향인 정의당 심상정 후보 표를 더하면 윤석열 당선인이 얻은 표보다 많다. 선거 승복이 없다면 국민 분열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다행히도 이 후보가 승복한 덕에 국민 통합의 첫 단추를 끼우게 됐다. 비록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가 그동안 여러 잘못을 저질렀고 아직 해명되지 않은 의혹이 여럿이라고 해도, 나랏빚을 지나치게 늘리는 퍼주기식 공약(물론 본인과 지지자는 전혀 인정하지 않겠지만)을 내놓았다고 해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그는 승복으로 민주주의 원칙을 지켰다. 그의 승복이 아름다운 이유다.
이번 대선에서 드러난 민심은 심판이나 청산이 아니다. 이쪽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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