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막강한 군사력으로 우크라이나를 점령할수는 있다.
무력 점거후 푸틴의 꼭두각시인 친러 괴뢰정권을 옹립한뒤 푸틴은 승전 선언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푸틴의 착각일뿐이다. 푸틴은 이미 패배한 전쟁을 하고 있다.
영웅적인 결사항전에 나선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총칼로 위협해 찍어누를수는 있어도 그들의 자유의지를 완력으로 꺽을수는 없기 때문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나에게는 죽음을 겁낼 권리가 없다"며 결연한 국가 수호 의지를 드러냈다.
"나라를 지키겠다"며 귀국한 해외 거주 우크라이나 국민만 7만명에 육박한다.
이처럼 죽기살기로 버티는 민족을 군사력으로 겁박해 노예화하는건 불가능하다.
명분도 없고 정당성도 상실한 침공으로 연일 무고한 시민들이 살상되고 있다. 야만적인 전쟁범죄다.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러시아 국민들 조차 전쟁을 왜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20년 이상 장기집권중인 독재자의 독선과 오기의 결과물인 '푸틴의 전쟁'에 동원돼 총알받이 신세가 된 러시아의 젊은 병사들도 안타깝다.
전세계인이 극혐하는 공적(公敵)으로 떠오른 푸틴은 푸틀러(푸틴+히틀러)가 됐다.
주권과 자유의 소중함을 되새김질하고 있는 국제사회가 연대해 러시아와 푸틴을 단죄할 것이다.
이미 전세계 모든 나라가 규탄대열에 합류했다.
중국, 북한 등 극히 일부 인권후진국들만 푸틴의 반인륜적 범죄행위에 눈을 감았을뿐이다.
연일 무고한 인명살상 참극이 벌어지고 있지만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푸틴의 악마적 행태는 힘이 약한 나라의 주권을 함부로 유린하는 패권국가 민낯을 드러냈다.
특히 주변 국가들을 속국처럼 취급하고, 군사·경제보복 조치로 길들이기를 해온 푸틴과 시진핑의 패권적 행태가 똑 닮았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옛소련의 일부라며 내정간섭을 당연시했다.
시진핑은 트럼프를 만났을 때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며 우리나라를 속국 취급했다.
주권국에 대한 모욕이자 저열한 패권적 시각을 숨길 생각도 없는듯하다.
약한 나라는 짓밟고, 굴종하는 나라는 더 짓밟는게 패권국가들의 전형적인 행태다.
그런데도 지난 5년간 우리나라 외교는 고압적인 언사와 행보로 우리를 하대하는 중국 앞에 스스로 바짝 엎드렸다.
중국에 간 대통령이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 한국은 작은 나라"라며 국격을 자청해 낮췄다.
이건 겸양지덕이 아니라 비굴한 것이다.
군사주권 훼손논란에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추가배치·美미사일방어체계 편입·한미일 군사동맹을 안하겠다는 '삼불(三不)'을 중국에 갖다 바쳤다. 시진핑의 중국몽도 함께 하겠다고 했다.
중국 앞에서 간과 쓸개를 다 내줄 정도로 굽신거렸지만 돌아온 건 무시와 냉대였다.
대통령은 혼밥 굴욕을, 수행한 사진기자는 중국공안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는데 되레 쩔쩔매며 유감조차 표명하지 않았다.
중국에대해 강하게 항의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질때마다 국익 핑계를 대며 좌고우면했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려면 중국의 협조와 도움이 필요하니 심기를 거스리면 안된다는거다.
그런데 시진핑이 6·25를 "미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으로 규정하고, '평화 수호'를 위해 참전했다는 궤변을 배설한게 한두번이 아니다.
시진핑이 김정은을 도우면 도왔지, 우리를 도울 나라가 아니라는건 명명백백하다.
같은 민족을 핵으로 위협하는 시대착오적인 세습집단인 김정은 체제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과의 대화 분위기 조성이라는 미명하에 임기내내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온건 삶은 소대가리 막말과 미사일뿐이다. 북한 주민은 더 노예화된 삶을 살고 있다.
이들 불량국가에 맞서 평화를 지키고 유지하려면 힘이 필요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힘이 없는 평화의 허구성과 동맹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입으로만 떠드는 가짜평화가 아니라, 함부로 우리를 무력으로 겁박하려는 생각이 들지도 못하게 할 만큼 강력한 힘을 기르는게 평화다.
안보에 도움이 되면 자위적 선제타격 능력도 강화하고 사드도 추가 배치할수 있는것이다.
주권국인 우리가 결정해서 판단할 문제다.
이러면 또 "전쟁하자는 거냐"며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묻고
푸틀러와 같은 독재자에게 머리를 조아린채 속국이 돼 비굴한 노예적 삶을 살더라도 전쟁만 아니면 된다는건가.
'더러운 평화'가 전쟁보다 낫다는 논리는 120년전 이완용이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을 때 써먹었던 것이다.
진짜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고 했다.
[박봉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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