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함이 아닌 내부가 훤히 비치는 비닐에 투표지 넣는 것이 말이 되냐. 어떻게 직접 선거가 이러냐"(부산 강서구 명지 1동 사전 투표소에서 확진·격리 투표한 한 유권자)
20대 대선 사전투표 마지막날인 5일 코로나 확진자·격리자 대상 투표가 실시된 전국의 투표소가 대혼란현장으로 변했다. 이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투표 마감 시간이 3시간이 지난 오후 9시까지 일부 투표소에서 사전투표가 마감되지 않았다. 서울의 한 투표소에선 특정 후보에 기표된 투표용지를 배부했다가 유권자들의 항의로 잠시 투표가 중단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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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오후 서울역 앞 임시기표소에서 코로나19 확진·격리자들이 투표하고 있다. 2022.3.5 [사진 = 연합뉴스] |
서울 은평구 선거관리위원회 등에 따르면 은평구 신사1동주민센터에서 확진·격리자 대상 사전투표가 진행 중이던 유권자 3명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게 투표된 용지가 든 봉투를 받는 일도 발생했다. 해당 투표용지가 발견된 뒤 일부 유권자는 투표를 할 수 없다고 항의했고, 투표를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면서 현장이 아수라장이 돼 투표 진행이 잠시 중단됐다. 선관위 관계자는 "확진자들이 낸 기표 용지를 다시 (비확진자) 투표소에 올라가 참관인 앞에서 투표함에 투입하는 절차가 있는데 너무 정신이 없어서 기표가 된 용지가 들어있던 봉투와 투표용지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번 선거를 앞두고 발표한 '제20대 대선 투표관리 특별대책'에 따르면 확진·격리 유권자들은 투표 현장에서 선거사무보조원에게 신분을 확인받은 뒤 투표용지 1장과 임시기표소 봉투 1장을 배부 받는다. 이후 전용 임시 기표소에 들어가 기표한 뒤, 용지를 미리 받은 빈 봉투에 넣어 보조원에게 전달한다. 보조원은 참관인 입회 하에 봉투에서 투표지가 공개되지 않도록 꺼내 투표함에 넣어야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은 매뉴얼대로 운영되지 못한 곳도 많았다. 여러 명의 봉투를 한꺼번에 수거하거나, 종이봉투에 담아 야외에 방치하는 등의 주먹구구식 진행이 발생했다.'봉투'도 현장에선 쇼핑백, 구멍뚫은 골판지 상자, 플라스틱 바구니 등으로 운용되기도 했다
◆본지기자 투표 장소에선 본인확인 부실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는 이날 일반 선거인과 동선이 분리된 임시 기표소에서 오후 5시~6시 사이에 투표를 진행했다.하지만 준비 부족과 복잡한 절차로 인한 지연과 혼선이 빚어져 투표소 곳곳이 아수라장이 된 것이다. 불편한 몸을 끌고 투표소로 나온 확진자들이 1~2시간씩 대기하는가 하면 수도권의 한 지역에서는 기다리다 쓰러지는 확진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확진자용 임시 기표소에는 따로 투표함이 없고, 참관인이 박스나 쇼핑백 등을 이용해 기표용지를 대리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자 부정선거 우려가 있다는 항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부실한 현장관리는 코로나19 확진으로 이날 서울에서 확진자·격리 투표를 한 본지 기자를 통해서도 직접 목격됐다. 종이명부에 이름을 적고 신분증을 내 확인 후 기표용지를 출력했지만 아무래도 코로나 상황이다 보니 얼굴을 살짝 내려 본인을 확인하는 절차가 생략된 것이다. 기표소의 경우, 가림막을 위에 테이프로 붙여놔서 뒤에서 기표 장면이 다 보이는 모습도 목격됐다. 비밀투표 관리도 영 부실했던 셈이다.
일손이 달리는 공무원들이 안쓰러운 생각에 항의를 자제하는 시민들이 다수이긴 했지만 곳곳에서 "이게 무슨 비밀투표냐"는 불만이 곳곳서 터져나왔다. 기표장을 감독하는 사람이나 시스템도 부실했다. 형식적인 신원 확인절차를 거쳐서 비확진자 투표장을 오가며 투표용지를 받아 나르는데도 인력도 부족하다 보니 사진을 촬영한다 해도 제동 걸 만한 인력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이외에도 일부 투표소에선 참관인이 참석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되는 등 그야말로 현장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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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아수라장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선관위 측은 "충분히 관리가 가능하다"며 안이한 태도를 보여와 책임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당초 여·야는 국회에 오후 6∼9시로 투표 시간을 연장하는 법안을 제출했는데 선거 관리의 주체인 선관위가 난색을 표명해 투표시간 자체를 별도로 연장하기보다는 오후 6시 전후로 확진자 동선을 따로 관리하는 것으로 정리가 된 상황이다. 전국 3500여개 투표소에 분산 효과도 있고 해서 수치 분석을 통해 투표소 현장 혼란이 최소화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선관위는 '투표소별 투표함 1개 규정'에 따른 주먹구구식 대책 마련과 확진자 투표자 규모 폭증에 대한 예측 미비 등으로 대혼란을 자초한 만큼, 부실관리 책임론을 피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선관위 측은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확진자·격리 투표이다 보니 많은 예상외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치권 여·야 일제히 비판
여야에서 모두 선관위를 질타하는 목소리들이 나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SNS에서 "참정권 보장이 최우선"이라며 "선관위와 당국은 9일 본투표에서는 확진자들의 불편과 혼선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인 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SNS에서 "국민의 투표권은 어느 상황에 있더라도 보장받아야 한다"며 "코로나 확진자분들의 투표가 원활하게 이뤄지고, 확실하게 보장될 수 있도록 선관위가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입장문을 통해 "이렇게 부실하고 허술한 투표를 관리랍시고 하는 선관위의 무능함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고 밝혔다.이양수 선대본부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선관위의 무능한 선거 관리로 국민의 소중한 투표권 행사가 심각하게 제약되고 침해됐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행안위원들은 이날 밤 선관위를 항의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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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 투표 이틀째인 5일 오후 광주 서구 학생교육문화회관에 마련된 상무1동 사전투표소에서 확진·격리자가 사전투표를 위해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2022.3.5 [사진 = 연합뉴스] |
이런 혼란이 벌어지다 보니 투표 집계도 크게 늦어졌다. 투표 종료시간인 오후 6시를 4시간 이상 넘기고 오후 10시가 지난 후에야 최종 집계율이 나왔다. 4419만7692만명의 유권자중 1632만3602명이 투표에 참여해 사전투표율은 36.93%로 종전 최고 사전투표율이었던 21대 총선 기록(26.69%)을 넘어섰다. 사전 투표율이 30%를 넘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가운데 주먹구구식 투표 관리가 벌어진 셈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본투표 당일인 9일 최종개표 결과 초박빙으로 나올 경우 자칫 '사전투표 대혼란'이 부정선거 논란이나 불복의 빌미를 제공할 수
부정 선거론을 지속해서 주장해 온 민경욱 전 의원은 SNS에서 "사전투표하라고 그렇게 난리를 쳤으면, 그 사전투표가 부정투표로 진행되는 상황에 대해 국힘당(국민의힘)은 일언반구라도 언급하는 게 도리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서동철 기자 / 성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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