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직전인 지난 21일 대국민 연설에서 "현대 우크라이나는 전적으로 러시아, 특히 볼셰비키 공산 러시아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볼셰비키 공산당 지도자인) 블라디미르 레닌과 그의 동료들은 러시아의 역사적 영토의 일부를 떼어내 분리하는 가장 어설픈 방식으로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정당한 국가'가 아니고 러시아의 일부라는 뜻이다.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국제법 위반이다. 민족의 자기 결정권을 규정한 유엔 헌장 1조 위반이다. 옛 제국주의자들의 발언과 다를 바 없다. 역사적 사실과도 어긋난다. 우크라이나가 중세 이후 독립을 잃고 수백 년간 옛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서부는 상당 기간 폴란드 또는 리투아니아,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는 모스크바보다 더 오래된 도시다. 우크라이나는 20세기 초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자 최고 의회 라다를 소집하고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볼셰비키 공산당에 의해 좌절됐다. 결국 옛 소련 연방의 일부가 되었다. 옛 소련은 학교에서 우크라이나 언어를 가르치는 걸 금지했다. 그 문화 역시 탄압했다. 우크이나는 1991년 옛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했다.
문득 지금 우크라이나인의 처지가 남이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7년 4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언론과 했던 인터뷰가 기억난다. 그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으로부터 들었다며 이런 얘기를 했다. "이어 그(시진핑 주석)는 중국과 한국의 역사에 대해 말했다. 북한이 아니라, 한국 (전체) 얘기다. 수천 년 역사와 많은 전쟁에 대한 얘기다. 그리고 한국은 실제로 중국의 일부였다. 나는 10분간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 이 일(북한의 비핵화)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 주석이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중국의 일부'라는 말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정상회담에서 상당한 시간을 들여 중국과 한국의 역사를 얘기한 건 분명해 보인다. 그 역사가 중국에 유리하게 각색된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이 독립을 위해 저항한 역사는 빼고 중국의 신하가 됐던 시기의 역사만 기억한 건 아닐까.
인간은 누구나 '확증편향'의 노예다.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본다. 중국 권력자들이 자칫 지난 수천 년의 역사에서 한국이 중국에 고개를 숙였던 사실만 취합해 역사를 왜곡한다면 어찌 될까. 푸틴과 비슷한 발언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1943년 11월 카이로 회담도 기억난다.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중국 총통 장제스가 이집트 카이로에 모였다.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가 굳어진 때. 3자는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했다. 기밀 해제된 미국 국무부 기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중국이 만주와 한국의 재점령을 포함해 광범위한 야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다(There was no doubt that China had wide aspirations which included the re-occupation of Manchuria and Korea)." 다만 이 역시 미국 측 기록이므로 당시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나라의 독립을 유지하려면 '힘'을 키워야 한다. 그 힘은 우리 내부의 힘만 말하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들과 동맹을 유지해야 한다. 군사 동맹이 없는 우크라이나의 오늘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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