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논란이 대선의 뜨거운 이슈로 등장했다. 지난 7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집권하면 현 정권의 적폐 수사를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해야죠. 해야죠. 돼야죠"라고 수사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맞받아쳤다.
'적폐'라는 단어는 청산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적폐'의 사전적 정의는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다. 이런 폐단 자체는 마땅히 청산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 정권에 대해 '적폐'라는 단어를 쓰게 되면, 자칫 전 정권을 청산의 대상의 규정할 위험이 있다. 전 정권의 존재를 부인하고 싶고, 전 정권의 정책을 '악'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를 환영할 것이다. 그들 눈에는 전 정권의 잘못이 한 둘이 아니다. 현 정권에 대해서도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을 거론하며 적폐가 쌓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권을 '적폐'로 규정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진보 정권은 그 이전의 보수 정권을 적폐로 규정하고, 보수 정권은 그 이전의 진보 정권을 적폐로 규정하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
그 결과는 바로 '국민 분열'이다. 보수 정권이 적폐 수사의 대상이 되면 정치보복이라고 할 것이다. 진보 정권 역시 그런 보복을 당했다고 할 것이다. 보수 정권의 강성 지지자들은 이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들이 정권을 잡으면 반드시 똑같이 대갚음해 주겠다고 다짐할 것이다. 진보 정권의 지지자들 역시 똑같은 복수심에 빠질 게 틀림이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적폐 수사가 시작될 것이고, 서로에 대한 복수심과 증오는 깊어질 것이다.
이는 이미 대한민국의 현실이 됐다. 현 정권은 집권 후 '적폐 청산'을 기치로 내세웠다. 전 정권의 권력자들뿐만 아니라, 그 정책을 충실히 집행한 공무원들마저 적폐 수사의 대상이 됐다.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은 감옥에 갇혔다. 보수 진영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를 정치보복으로 보지, 정당한 적폐 청산으로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복수라는 것이다.
만약 윤석열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해 현 정권의 적폐 수사와 똑같은 방식으로 또다시 적폐 수사를 벌인다면 어떻게 될까. 진보 진영 사람들은 지금 보수 강경파가 느끼는 감정과 똑같은 심리 상태에 빠질 것이다.
어떤 이들은 부당한 '복수'에 대해서는 '응징'하는 게 정의라고 믿는다. 윤 후보가 당선되면 현 정권이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했던 부당한 복수에 대해 '응징적 복수'를 하는 게 정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국민이 내어준 권력을 사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응징적 복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사라져야 한다.
문 대통령은 지금 어떤 마음일까. 본인이나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이 적폐 수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윤 후보의 발언에 강경 대응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만 같다.
누구든 위기에 처하면, 자신을 지켜줄 사람을 찾게 된다. 문 대통령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른바 '친문'이라고 하는 강성 지지자들을 버팀목으로 삼고 싶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윤 후보의 '적폐 수사' 발언을 비판하면서 "노 전 대통령 퇴임 후의 비극을 겪고도 정치문화는 달라지지 않았다"라며 노 전 대통령의 아픈 죽음을 상기시켰다. 지지자들에게는 '나를 지켜달라'는 신호로 읽혔을 거 같다.
적폐 수사는 극렬한 분열을 낳을 것이다. 또다시 그런 일을 겪을 수는 없다. 차기 정권의 대통령은 '적폐'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법 행위가 드러나면 수사는 해야 한다. 하지만 '정권의 적폐'를 타깃으로 하는 수사는 없어야 한다. 이는 표적수사가 될 수 있다. 현 정권이 그랬듯이 새 정권 역시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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