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연합뉴스] |
그냥 해본 말이 아닐 것이다. 나랏님이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만큼 일사천리로 개고기 식용금지법이 만들어지는건 아닌지 모를일이다.
전혀 근거가 없는 황당한 억측이 아니다. 지난 2018년 4월 2일 문 대통령이 '월성 1호기의 영구 가동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인가요'라는 댓글을 올렸다. 이후 바로 두달뒤 원전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는 멀쩡한 월성원전 1호기 조기폐쇄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이듬해말 영구정지 조치가 취해졌다.
대통령의 개인적 신념이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국가기관이 개입해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을 조작하고 은폐하는 범법행위까지 벌어졌다.
다만 정당하지 못한 월성원전 조기폐쇄로 현정권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있는 만큼 당장 개고기 식용금지법 제정을 벼락치기로 밀어붙일 확률은 커보이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대통령의 식용 금지 발언은 여러모로 적절치 않다.
글을 읽는 독자들의 오해를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에서 먼저 밝혀두는데 필자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타인에게 강요할 생각은 전혀없지만 심정적으론 주변 사람들도 개고기를 멀리했으면 한다.
인간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개를 가족처럼 여기는 애견인이 급증하면서 개식용 금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조사기관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적게는 60%에서 많게는 80%까지 식용금지 찬성 입장이 압도적이다.
다만 국가가 나서 국민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은 먹지 말아야하는지까지 시시콜콜 법으로 규제하는건 전혀 다른 문제다. 법이라는 제재수단으로 헌법이 보장한 개인의 기본권 권리인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개고기를 몸보신용으로 또는 입맛에 맞아 즐기는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렇다고 이들을 비정상이라고 매도할수는 없다. 개고기 식용은 오랫동안 내려온 하나의 식습관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 눈에는 개고기 식용이 불쾌하고, 불편하고, 혐오스러운 악습일지 모르겠지만 다른 취향과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쇠고기, 돼지고기 소비하듯 개고기를 바라볼 뿐이다. 그런 사람에게 당신의 식습관이 잘못됐으니 스스로 못 끊으면 나라가 법으로 금지하겠다고 압박하는게 과연 정당하고 옳은가. 자유로운 선택의 권리를 국가가 강제로 박탈하는게 사회전체적으로 더 위험할 수 있다.
다수결 원칙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민주주의 체제에 살고 있으니, 압도적 다수의 사람들이 식용 금지를 원하면 다수결에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는건 되레 진정한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도전이다. 민주주의 참다운 가치는 다수결의 횡포가 아닌 소수의견 존중을 통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개고기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똑같은 국민이다. 더많은 사람들이 개고기 식용을 반대한다고 해서 개고기를 먹을 권리를 국가가 빼앗는건 공권력 남용이다.
권력자가 국민의 삶에 시시콜콜 개입하고 자신의 신념을 강제로 주입하는 행태는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나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어차피 개고기는 곧 사라질 식문화다. 실제로 애견인 인구가 급증하고, 개고기 식용을 거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개고기를 먹는 사람 숫자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매일경제신문 본사 근처에 몇년전까지도 유명한 개고기집이 성행했지만 손님 발길이 줄어들면서 문을 닫았다. 수요감소로 개고기 식당이 줄줄이 폐업하면서 개고기집 자체를 찾기 힘들 정도다. 이처럼 그냥 놔둬도 개 식용문화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운명이다. 굳이 정부가 개입해서 금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대외적으로도 괜히 긁어 부스럼만 만들뿐이다. 벌써부터 전세계 외신이 대통령의 개고기 식용 금지 발언을 잇따라 보도하고 있다. 해외에서 개를 먹거리로 삼는 야만적인 나라라는 부당하고 부정적인 고정관념만 더 키울까 걱정스럽다.
타문화에 대한 아무런 고려없이 국내 개고기 소비행태를 비난해온 해외 유명인사나 동물권익단체들에게 또 다른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개연성도 크다.
게다가 원모심려 없이 툭 던지듯하는 대통령 발언은 식용견을 사육하고 유통하고 식당에서 판매하는 자영업자 등 개고기 서플라이체인에 엮인 종사자들에게 큰 상처를 줬다. 잠재적 범죄자이자 악인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긴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동물단체와 애견인 눈치를 보느라 개고기집이 아니라 영양탕 사철탕 보신탕 등의 이름을 쓰면서 숨기듯 영업을 해온것도 억울한데 이젠 범법자로까지 몰리게 됐으니 분통이 터질만도 하다.
범법자가 안되려면 생업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툭하면 혈세를 뿌려 문제를 해결하는 정부가 보상금을 퍼주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개고기 식용 금지를 원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에서 내년 대선을 앞둔 고도의 정치적 발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코로나 장기화에 따른 자영업자 몰락, 대장동과 화천대유 돈벼락 사태, 북한 무력도발·종전선언, 불안한 물가, 전세대란과 집값 폭등, 대출옥죄기에 따른 대출 대란 등 언뜻 생각해도 현안이 한두가지가 아닌데 뜬금없이 개 식용금지를 꺼냈으니 그렇게 생각할만도 하다.
물론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랏님이 이제 하다하다 개로 국민 갈라치기에 나섰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국민 개개인이 각자 취향과 기호에 따라 자유의지로 선택하면 될일까지 오지랍 넓게 정부가 끼어들어 이래라 저래라 개입하는건 과유불급이다. 더 심하게 표현하면 국가폭력이다.
[박봉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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