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호남지지율 尹 앞서자 '역선택' 논란
전문가들 역선택 발생 가능성은 인정
방지 조항 실효성에는 '글쎄' 2002년 시행한적 있지만 갈등 극심
지난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선, 전당대회 과정에서 불거졌던 '역선택' 이슈가 국민의힘 대선 경선 과정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역선택'은 경쟁 정당 지지자들이 다른 정당 선거에 참여해 조직적 투표를 함으로써 선거 결과를 왜곡시키는 행위다. 여론조사에서 상대당 후보 중 약한 후보를 지지한다고 응답해, 자신이 지지하는 당 후보의 본선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역선택 방지 조항'은 당 경선 과정에서 이를 통한 왜곡을 막기 위한 장치로, 조사 대상을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으로 한정하는 방안이다.
역선택 논쟁은 짧게는 여론조사가 경선에 활용된 2002년 대선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과정, 길게는 정치 여론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15대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논쟁이다. 20년을 이어온 논쟁, 역선택은 실재할까. 막을 방법은 있을까.
1. 홍준표 호남 지지율 상승에 역선택 논란 재점화
국민의힘 내 역선택 논란은 30일 한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재점화됐다. TBS 의뢰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27일, 28일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홍준표 의원은 범보수권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오차범위 안으로 따라잡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조사에서는 홍 의원이 광주/전라 지역에서 윤 전총장에 14.2%p 앞선 것으로 나타나면서 정치권에서는 '역선택'효과라는 주장이 나왔다.
상대적으로 보수층 지지가 높은 윤 전 총장과 최 전 원장은 당 선거관리위원회에 역선택 방지조항 도입을 촉구했다. 윤 전 총장 캠프는 "역선택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고, 최 전 원장 측 역시 홍 의원이 2018년 지방선거 당시에는 역선택 방지를 주장하고 지금와서는 찬성하고 있다면서 역선택 방지조항 도입을 주장했다. 홍 의원은 반면 1991년 광주·전남 조직폭력배 소탕, 1980년대 초반 전북 부안에서 방위로 복무한 이력 등을 꺼내들며 "호남 지지율이 올라가니 이젠 역선택 운운하며 경선 여론조사에서 호남을 제외하자고 하는 못된 사람들이 있다"고 받아쳤다.
2. 역선택 발생 가능성에는 '끄덕'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역선택 발생 논란에 대해 "가능성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는 대선 후보 지지여부를 먼저 묻고 정당 지지도를 질문 항목 마지막에 배치하는 만큼 역선택이 작용할 여지가 있다는 주장이다. 국민의힘 한 초선의원은 "정당 지지도를 먼저 묻고 걸러낸 다음 대선 후보 지지여부를 묻는 방식이 아닌 만큼, 민주당 지지자 중 역선택을 시도하는 응답자를 걸러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여론조사를 두고 조직적으로 역선택을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평가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단 여론조사가 시작되면, 받은 즉시 지지자 단톡방에 정보가 공유된다"면서 "질문항목, 조사기관 뿐 아니라 조사 전화 전체 녹취파일이 공유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여론조사기관이 위치한 지역에서 사용되는 전화번호 유형이 공유되기도 한다"면서 "주로 걸려온 전화의 가운데 자릿수를 공유하면서 '이 번호 올 경우 이렇게 응답하라'는 움직임도 나타난다"고 전했다.
3. 역선택 방지조항 도입에는 "글쎄"
하지만 역선택 방지 조항을 도입한다고 해서 이같은 현상을 막을 수 있는가를 두고는 견해가 엇갈린다.
역선택 방지조항 무용(無用)론자들은 정당지지도 질문을 앞세워 표본을 걸러낸다고 해도 조직적 움직임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견해를 내놨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런 역선택을 시도하는 응답자들은 주로 정치 ’Politically Active’(정치 고관여층)인 경우가 많다"면서 "마음만 먹으면 민주당 지지자가 국민의힘 지치층이라고 응답해 표본을 왜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과거와는 달리 유권자들도 조사 방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여론조사의 표본 수와 조사 기간을 늘려 조직적 움직임을 '물타기'할 필요성도 제시했다.
반면 조항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측은 실제로 이런 움직임이 있다고 해도 "대세에는 영향이 없다"고 주장한다. 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역선택 방지조항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인사들은 주로 자신의 중도확장성을 주장한다"면서 "하지만 실제로 국민의힘 인사가 중도확장을 꾀한다면 중도층까지의 확장성이지 진보층까지의 확장성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역선택 방지조항'인 무당층과 국민의힘 지지층으로만 표본을 한정해도 중도확장성 측정에는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이 관계자는 "표본 수 자체를 늘리더라도 전체 유권자 중 민주당 지지자가 30~40%정도 작지 않은 규모인 만큼 민주당 유권자들의 유입도 똑같이 많아진다"고 주장했다.
4. 2002년 盧·鄭 단일화때 적용됐지만...조항 합의하다 단일화 무산 위기
역선택 방지의 현실성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만큼, 여론조사가 경선에 도입된 이후 방지조항을 포함한 사례는 단 두차례로 손에 꼽을 정도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 21 후보의 단일화 경선이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층이 민주당 경선 과정에 개입할 가능성이 제기된 가운데 양 진영은 역선택 방지조항 도입을 두고 지난한 합의 과정을 거쳤다.
당시 정 후보는 동등한 비율의 양당 대의원만 참여하는 여론조사를 주장한 반면 노 후보는 여론조사 대상자에 일반 국민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대의원 가운데 반노 성향 반란표가 적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후보는 이회창 후보 지지층의 역선택 개입 가능성을 제기했다.
당시 양 진영은 다단계 역선택 방지 장치들을 마련했다. 2개의 여론조사기관을 선정, 먼저 단순지지도를 물어 이 후보 지지자를 제외한 뒤 노·정 각 후보의 경쟁력을 물었다. 두 기관 결과 중 이 후보가 두 여론조사기관에서 지난 2주간 실시한 조사에서 기록한 지지율 중 최저치보다 낮게 나타난 경우, 해당 여론조사 결과는 경선에 반영하지 않는다는 안도 마련했다. 이 후보 지지율이 낮게 나타났을 경우, 빠진 지지율 만큼이 민주당 후보 역선택에 활용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작용한 것이다. 결국 두 조사기관 중 하나인 월드리서치 조사 결과 이 후보 지지가 28.7%를 기록,
한 정치권 관계자는 "복잡한 역선택 방지 조항을 만들면서 당시 양 진영 단일화가 무산 위기까지 갔었다"면서 "경준위에 이어 선관위와 후보간 갈등이 심한 지금 상황에서 이 논쟁까지 더해진다면 그야말로 '아비규환'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제완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