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분이 있는 은행 임원 A씨가 지난주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9월초로 잡아놨던 자녀 결혼식을 11월로 연기한다는 내용이었다. "힘들고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했다. 공감이 갔다.예식날짜 뒤로 미루고, 친지와 지인들에게 다시 잡은 예식날을 재통보하고, 다 맞춰놓은 답례품 처리까지 골치 아픈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역시 9월 중순 결혼을 앞두고 있던 후배 기자 B는 아예 예식을 내년으로 옮겼다. 예식장측에 상당한 위약금까지 물었다고 한다.
이 모든 사달이 친지 49명까지만 예식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비정상적인 과잉 방역조치때문이다. 언제 풀릴지 알수 없는 억지스런 방역조치에 예식을 앞둔 예비부부들의 분노가 폭발 직전이다. 친구 한명 부를 수 없게하니 당연히 원성을 살만하다.
지난달 12일 대통령이 "짧고 굵게 끝내겠다"고 했던 4단계 거리두기가 연장, 재연장, 재재연장되면서 7주째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굵고 길어진' 4단계가 언제 끝날지 모르게 된 만큼 방역조치도 이제 상식을 따라야 할때가 됐다. 사실 이미 많이 늦었다.
결혼식 인원제한부터 합리적인 수준으로 당장 풀어야 한다. 왜 참석인원을 49명으로 묶어야 하는지에 대한 과학적 이유는 전혀 없다. 방역당국이 자의적으로 정한 숫자에 불과하다.
예식장이나 백화점·대형마트에 출입하려면 체온 측정하고 당연히 마스크도 착용해야 한다. 똑같은 방역절차를 거치는데 백화점과 마트 등 다중이용시설엔 하루 수천 ~수만명이 들락거려도 전혀 문제를 삼지 않는다. 종교시설 예배도 99인까지 볼수 있고 콘서트장에는 2000명까지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결혼식에만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이유가 전혀 없다.
인원 제한을 푼뒤 집단감염이 발생하면 책임 질거냐는 비판이 분명 나올수 있다. 하지만 집단 감염이 발생하면 영업을 못해 큰 피해를 봐야하는 예식장측이 알아서 소독 등 철저한 방역조치를 취할 것이고, 예식 참석자들도 모두 마스크를 쓸것이기때문에 사실 집단감염 위험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다.
만에 하나 환자가 발생한다해도 큰 문제가 될 건 없다. 예방객들 모두 개인정보를 제출하는 만큼 쉽게 추적·진단·격리·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방역당국은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모임을 통한 경로미상 감염확산을 막는데 집중해야 한다.
점심과 저녁 숫자 제한도 비상식의 극치다. 4명으로 식사인원을 제한하는 점심부터 보자.
동료 8명이 테이블 두개를 차지하는것과 생판 모르는 사람 4명이 옆테이블에 앉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사무실에서 하루종일 말 섞으며 같이 근무한 동료보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옆에 앉히는게 더 감염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보는게 상식적이다. 그런데도 모르는 사람 4명이 옆테이블에 앉는건 되고 동료들이 옆 테이블을 채우는건 안된다는 4인 규제는 국민 불편만 키울뿐 감염 예방에도 별 도움이 안된다.
2명으로 식사인원을 제한한 저녁은 더 황당한 케이스다.
이번주부터 백신 접종완료자 2명을 합쳐 4명까지 식당·까페 저녁 모임이 가능하도록 한건 그나마 다행스럽지만 이것도 자영업자들이 보기엔 언발에 오줌누기다. 백신접종 완료율이 20% 초반으로 OECD 38개국중 꼴찌에 불과한데다 접종완료자 절반은 60세 이상 고령층으로 식당·까페 주력 소비층이 아니어서다. 반면 식당·까페 주고객인 30~40대 접종율은 극히 미미하다. 생색내기 조치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건 이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점심·저녁을 구분하는것도 아닌데 오후 6시 이후 2명이상 식사를 못하게 하는건 저녁장사를 하지 말라는거나 마찬가지다. 동료나 지인이면 6명이든 8명이든 점심·저녁 식사가 가능하도록 규제를 푸는게 합리적이다.
백신접종을 완료한 부모와 따로 사는 자녀 등 가족 4명이 식당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할수 있지만 정작 집에선 2인 이상 저녁 식사를 못하게 한것도 한마디로 코미디다. 다중이 모이는 식당보다 가정집이 더 위험하다는것인지 묻고 싶다.
사실 명절때 집에서 10명이 모이든 20명이 모이든 그건 가족들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다. 가족간 만남까지 국가가 나서 시시콜콜 인원을 자의적으로 제한하는건 과도한 간섭이자 국민 기본권 제한이다. 정부가 강제하더라도 실제로 이를 지키지 못하는 가족들이 상당수 일 것이다. 지킬 수 없는 과도한 방역조치를 국민에게 강제해 잠재적인 범죄자로 만드는건 옳은 방역이 아니다.
골프·헬스장에서 샤워를 못하게 하는것도 불합리하다. 샤워하면서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것도 아닌데 굳이 막을 이유가 없다. 헬스장에서 그룹운동(GX)을 할때 빠른 음악을 틀지 못하게 하는것도 해외언론의 조롱까지 받았지만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매일 1000만명 이상이 이용하는 지하철은 꽉꽉 채워 운행하면서 저녁 6시 이후 택시 탑승객을 2인으로 제한하는 근거는 도대체 뭔가.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방역은 데이터 기반 과학인데 문재인 정부의 방역은 가학(加虐)"이라고 질타했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코로나는 잡지 못하면서 국민만 괴롭히는 과잉 방역조치라는 얘기다.
일부 방역조치를 완화하면 방역 경계심이 이완돼 집단감염이 확산될 수 있다는 반론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방역을 허술하게 하자는게 아니다. 마스크도 열심히 쓰는 등 개인방역은 철저히 해야 한다.
다만 봉쇄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수준의 방역조치인 4단계 거리두기가 두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4차 코로나 유행이 꺽이지 않고 있고, 국민 고통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에
[박봉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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