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들 가운데 국민의 삶에 관여하는 국가의 역할에 대해 정반대 입장을 가진 사람은 이재명 경기지사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일 것이다.
최 전 감사원장은 지난 11일 "현재 이 정부의 목표 중에 제일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국민 삶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라며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했다. 그는 "국민의 삶을 국민이 책임져야지, 왜 정부가 책임지느냐"라는 말도 했다. 다만 그는 "뒤처지는 국민들에 대한 책임, 이건 국가가 기본적으로 해야 한다. 소홀히 할 수 없다"라는 말로 국민 삶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기는 했다. 그러나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라는 게 그의 주장의 핵심이라는 건 분명하다. 최 전 원장은 그 이튿날에도 "정부가 모든 국민의 삶을 책임진다는 건 전체주의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재명 지사는 연일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내용의 정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달 22일 이 지사는 다음 정부 임기 안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 원, 그 외의 모든 국민에게는 연 10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그는 중산층을 포함한 무주택자 누구나 저렴한 임대료로 역세권 등 좋은 위치의 고품질 주택에서 30년 이상 살 수 있도록 하는 기본 주택을 100만 호 공급하겠다는 공약도 내놓았다. 이 지사는 국민 모두에게 1000만 원의 마이너스 통장을 제공하겠다는 기본 대출 공약도 제시했다.
사실 이 지사의 공약은 실현 가능성이 의심스럽다. 기본소득 공약에만 55조 원이 넘는 돈이 들어간다. 입지 좋은 곳에 100만 가구를 지을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싶다. 마이너스 통장 대출을 은행에 강요한다면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일 것 같다.
그렇다고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주장을 섣불리 찬성할 수도 없다. 내게 그의 주장은 불편하게 다가온다.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을 너무 좁게 해석한 거 같다. 더 많은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기회를 놓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최 전 감사원장의 말대로 국가가 국민의 삶에 광범위하게 개입할 경우, 전체주의의 우려가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가능성도 매우 크다. 이 문제를 제기한 대표적인 석학이 바로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다. 그는 "광범위한 정부 통제가 빚어내는 가장 중요한 변화는 심리적 변화, 즉 사람들의 성격이 바뀌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의 정부에 의존하면서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자유'를 점점 포기할 것이라는 우려다. 그는 "정치적 자유의 굳건한 전통도 새로운 제도와 정책들이 점차 그 정신을 훼손하고 파괴하는 그런 위험이 있다면 결코 안전장치가 될 수 없다"라고 했다. 우리나라처럼 정치적 자유의 전통이 취약한 나라라면 전체주의의 우려는 더욱더 크다. (하이에크의 주장은 대런 애쓰모글루의 책 '좁은 회랑(시공사 출판, 장경덕 번역)'에서 인용했다.)
그러나 동시에 하이에크는 자유방임의 철학 역시 경계했다. 그는 "자유방임(laissez faire)의 원칙에 관한 일부 자유주의자들의 아둔한 고집보다 자유주의의 대의에 더 해를 많이 끼치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건강과 근로 능력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최소한의 의식주가 모두에게 보장될 수 있다는 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시민의 자유'를 지키면서 '최소한의 의식주 또는 가능하다면 그 이상'을 모두에게 보장하는 게 되어야 한다. 하이에크의 주장대로 "그 목표를 향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이 있다"는 것 또한 알아야 한다. 동시에 "특정 목표를 달성하는데 더 효율적일 수도 있지만 자유로운 사회를 유지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는 수단을 선택할 위험" 역시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재명 지사의 공약이 혹시라도 '자유로운 사회'를 유지하는데 적합하지 않은 수단일 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동시에 최재형 전 원장식의 사고가 시민의 자유를 지키면서 국가가 국민의 삶을 증진시킬 기회를 가로막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
하이에크가 정부 개입이 시민의 자유를 침해할 것을 우려해 '노예의 길'이라는 책을 쓴 계기는 2차 세계 대전 중에 영국에서 나온 '베버리지 보고서'다. 국민에게 연금과 보편적 의료보험, 실업수당, 상병수당을 제공하고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자는 거였다. 하이에크는 이런 개혁이 시민의 자유를 침해할 것을 우려했으나 이는 기우였다. 이에 대해 대런 애쓰모글루는 "국가 역량 확대에 맞서 사회가 역량을 키우고, 국가에 대한 견제 장치를 마련한 덕분"이라고 했다. 우리가 시민 사회의 역량을 키우고 국가에 족쇄를 달 수만 있다면 국가 역시 역량을 키워 국민의 삶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가능성마저 무시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사회의 역량 강화 없이 국가의 역할이 커질 경우, 전체주의는 필연이라는 것 역시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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