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에 대한 지적재산권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백신 지재권 보호유예에 지지한다고 공식적으로 표명하면서 백신이 인류 공공재인가, 아니면 사적 재산인가에 대한 논의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하루 평균 사망자수가 4천 명을, 누적 사망자수는 24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코로나19 2차 유행이 인도를 강타하면서 코로나19 확진자수와 더불어 사망자수까지 매일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겁니다.
반면 영국은 백신 접종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서 현재 성인의 3분의 2이상이 백신 1회 접종을 마쳤으며 오는 17일부터는 식당과 카페 운영, 6인 이하 실내 만남 허용 등 코로나19 봉쇄조치 추가 완화에 나설 예정입니다.
또 미국도 절반이 넘는 성인이 한 번 이상 백신을 맞으며 일상생활을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휩싸여 한때 소비 붐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백신 접종률이 높은 국가에서는 백신여권 도입 논의까지 활발해지면서 같은 팬데믹 아래 다른 일상생활을 보내고 있는 겁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16%를 차지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은 전세계 생산량의 2%에도 미치지 못하는 백신을 공급받았고, 부국에 속하는 전 세계 인구의 16%가 백신을 절반 넘게 가져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백신 접종률에서 앞서고 뒤처지는 나라 차이가 커지면서 백신에 대한 지재권을 유예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백신 품질이 보장되지 않고, 백신 개발 동력을 떨어뜨린다며 코로나19 백신 특허 보호 면제에 거듭 반대 입장을 밝히며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트립스(TRIPS)는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에 대한 협정의 약자입니다.
국제무역기구(WTO)에서 지적재산권을 전 세계적으로 같이 보호하고 조치하기 위한 협정을 1995년 만들었습니다.
즉 이미 백신을 개발한 회사들은 백신 의약품, 의료기술 등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대한 격차가 커질 것을 우려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인도는 트립스 일시 유예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이후 국제사회에서 트립스 유예에 대한 지지 여론이 힘을 받았으며, 국내에서는 정의당 장혜영 의원의 대표 발의로 트립스 일시 유예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발의됐습니다.
도하 선언의 공식 명칭은 ‘트립스와 공중보건에 관한 도하선언’으로, 약에 관한 특허권을 둘러싸고 지적재산권의 유연성을 확인한 내용을 골자로 하며 2001년 11월에 발표됐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1982년 에이즈 사례가 처음으로 보고됐습니다. 급속도로 확산된 에이즈는 남아공 국민 40만 명에게 번졌으며 남아공 사회의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에이즈 환자들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1년에 의료비가 2000만 원씩 들어가는 상황을 견뎌내지 못하며 죽음에 내몰리고 있었습니다.
이는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는 ‘트립스’협정으로 인해 에이즈 치료제의 가격이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입니다.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시 할 수 없다는 여론에 힘입어 아프리카 국가와 인도, 브라질의 주도로 도하 선언을 채택하게 됩니다.
도하 선언은 각국에서 건강 필요에 의해 지적재산권을 완화해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게 하는 길을 열었습니다.
실제 도하 선언 채택 이후 남아공에서는 에이즈 치료제 생산이 촉진됨에 따라 연간 인당 약 1만여 달러에 이르던 치료제 가격이 하루 0.21달러 이하까지 하락하는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백신 지재권 유예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이 도하 선언을 내세우며 코로나19 상황에서 글로벌 정의라는 윤리적 차원을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지적재산권과 특허권을 보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의약품을 개발하는 데 큰 비용이 들기 때문입니다.
백신에 대한 지재권이 유예돼 백신을 판매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안 그래도 불확실한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백신 개발에 몰두할 동력이 사라진다는 비판입니다.
또 백신 지재권 유예가 실행돼도 의약품 생산역량이 없는 나라들은 백신을 생산하지를 못해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백신 제조사 ‘모더나’는 올해 여러 정부 및 기관과 20조원 규모의 코로나 백신 공급 계약을 맺고, ‘화이자’는 1분기 매출만 4조원에 달하는 등 이미 당사가 투입한 연구개발비는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백신
백신 지재권 유예를 둘러싸고 그 어느 것보다 생명이 먼저라는 당위적인 이유와 개발 동력 상실이라는 현실적인 이유가 첨예하게 맞서면서 어떤 결론이 나올 지 주목되고 있습니다.
[ 윤혜주 디지털뉴스 기자 / tkfkd1646@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