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의 첫 만남이 어렵게 이루어지면서 한일 간 고위급 소통이 재개되는 모습입니다.
다만 강제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배상 판결 등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장관회의 참석차 영국을 방문 중인 정 장관과 모테기 외무상은 현지시간으로 오늘(5일) 런던에서 양자 회담을 가졌습니다.
두 장관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을 먼저 한 뒤, 다른 회의실에서 20분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날 북핵 문제 뿐만 아니라 갈등 현안인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및 위안부 배상 판결,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습니다.
그러나 두 장관 모두 일정에 쫓겨 길게 대화하지 못하고 각자 입장을 설명하는 데 그친 것으로 해석됩니다.
외교부 설명과 일본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모테기 외무상은 강제징용 및 위안부 판결 문제에 대한 일본의 기존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배상 책임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등으로 모두 해결된 만큼 한국 법원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며 이에 대한 해법을 한국 정부가 가져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테기 외무상은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해 "자산의 현금화는 절대로 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정 장관은 일본 측의 올바른 역사 인식 없이는 과거사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위안부 및 강제동원 피해자 관련 정부 입장도 언급했습니다.
또 정 장관은 원전 오염수 방류가 한국 등 주변국 안전과 환경에 위협을 미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피력했으나, 모테기 외무상은 한국 정부의 이 같은 비판을 우려한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도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외교부에 따르면 두 장관은 양자회담에서는 물론 앞서 열린 한미일 회담에서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의 실질적 진전을 위해 공조를 강화하고, 미국의 새 대북정책 추진 과정에서 3국 간 계속 긴밀히 소통·협력하기로 했습니다.
외교부는 "양 장관은 한일이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긴밀히 협력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데에 뜻을 같이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회담은 지난해 9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 취임 후 한일 외교당국 간 첫 고위급 대면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집니다.
앞서 모테기 외무상은 지난 2월 정의용 장관 취임 후 의례적으로 하는 통화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외교부는 미국, 인도 등 다른 G7 회의 참석국과 양자회담을 사전에 공지했으나, 한일 회담은 끝난 뒤에야 그 사실을 밝혔습니다.
한미일 회담 전에 만난 한 일본 기자도 양국 장관이 만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부에서 확인해주진 않는다고 전했습니다.
자국 여론을 의식한 일본 정부가 한국에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회담 일정 공개에 부정적이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번 회담이 미국의 제안으로 열린 한미일 회담에 이어 개최됐다는 점에서 미국이 중재 역할을 한 게 아니냐는 입장도 있습니다.
미국이 계속 한미일 3국 공조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일본도 다자회의 기간 마주칠 수밖에 없는 한국과 계속 대화를 거부하는 데 부담을 가졌을 것으로 해석됩니다.
외교부가 공개한 사진을 보면 두 장관은 뻣뻣한 자세로 카메라를 바라봤습니다.
회담 배석자에 따르면 두 장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악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애초엔 팔꿈치 인사도 하지 않았다고 했으나 이후엔 스쳐 지나가며 했다고 전했습니다. 한일 장관의 사진 배경에는 국기도 나오지 않습니다.
두 장관은 전날 개최된 G7 확대 업무 만찬에서도 만나 대화를 나눴습니다.
정 장관은 회담 후 연합뉴스에 "좋은 대화를 했다"고 말했고, 외교부 당국자는 "좋은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양 장관이 시간이 너무 짧아 각각 입장을 확인하는 데 그친 것으로 보이지만 만났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한일 간 현안이 많고 첩첩산중이라 대화로 풀 수밖에 없는데 이번 회담이 그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언급했습니다.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