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 연속 내리 지기만 했던 선거를 마침내 승리로 이끈 장수였지만 표정은 밝지 않았다. 목소리가 잠깐씩 높아졌지만 이내 허탈한 침묵과 깊은 한숨으로 바뀌었다. 4.7 재보선을 압승으로 이끌고 이튿날 바로 직을 내려놓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난 12일 광화문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당이 우려했던대로 가고 있다"며 "지금처럼 해선 국민의힘은 내년 대선에서도 미래가 없다"고 일갈했다. 그는 "취임할 때부터 재보궐 이후 사라지겠다고 해왔지만, 그런 생각이 더 굳어진 건 선거에 자기 당 후보를 내는 것에 관심이 없는 행태를 보고 나서다"라며 "선거가 끝나고 다들 당 대표 할 생각밖에 안한다. 이게 이 당의 생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하 일문일답.
―4·7 재보선 후 비대위원장에서 물러났는데
▶그동안 못 본 책도 좀 보고 다음주에 쉬러 떠날 준비도 하고 있다. (그의 책상에는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쓴 트럼프 행정부 회고록인 'The Room Where it Happened'와 '21세기 기본소득', '노조공화국' 등 책들이 가득했다.)
―선거 결과를 놓고 여야가 모두 다른 의미로 시끄럽다.
▶선거가 끝나면 여야 할 것 없이 결과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걸 못하고 한쪽(국민의힘)은 붕 뜨고, 한쪽(더불어민주당)은 기분만 나빠한다. 두 당 모두 한 두달 동안 곤욕을 치룰 것 같다.
―국민의힘은 벌써 전당대회를 놓고 시끌벅적하다.
▶지난 10개월 간 당이 내년 대선을 치룰 수 있는 기본적인 '필요조건'을 만들어주고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충분조건'은 당 사람들이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 다들 당권에만 관심이 있다.
―누가 당대표가 되는게 낫다고 보나.
▶차라리 아주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면 초선 의원을 내세우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예전에 영국 토니 블레어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같은 모델이다.
이와 관련해 13일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국민의힘 대표를 뽑는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이제 젊은 미래세대가 산업화의 성취와 민주화의 성과를 뛰어넘을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당대회가 중진들의 자리싸움으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하고, 초선 당 대표 등판론에 힘을 실은 셈이다.
―위원장이 국민의힘으로 다시 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꽤 나오는데.
▶더 이상 애정이 없다. 보궐선거 전에 중진연석회의를 했다. 소위 당 중진이라는 사람들이 단일화를 앞두고 우리 당 후보를 내는 데 관심이 없었다. 이런 행동을 보고는 선거 끝나고 바로 당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국민의힘엔 절대로 안 갈 것이다.
―중진들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편에 섰다는 건가.
▶지난 3월 19일이 후보등록 마감일이었는데, 17일에 오세훈 시장이 나를 꼭 만나야 한다고 하더라. 가족들과 모처럼 저녁식사를 하러 나와있어서 거기로 오라고 해 만났는데 오 시장이 '중진들 압력과 압박이 너무 심해서 견디기 힘들다'라고 했다. 자포자기 상태더라. 그래서 '욕은 내가 먹을테니 당신은 버텨라. 전화 받지 말아라'라고 했다.
그 다음날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이재오 전 장관이 나보고 나가라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정당을 왜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자강을 해야 하는데 또 딴 생각만 한다.
―당시만 해도 안 대표가 이길 가능성이 더 높아보였는데
▶내가 누누이 국민의힘 후보가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여론조사를 다들 단편적으로 숫자만 본다. 시계열별로 놓고 흐름을 읽어야 한다. 나는 그 작업을 1960년대부터 해왔다. 그런 선상에서 오 시장이 승리할 것이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안 믿더라.
―안 대표에게 쓴소리를 많이 하는 데 대한 불만도 나온다. 힘을 합쳐야 할 대상을 공격한다고.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내가 사감을 가질 일이 뭐가 있나. 내가 욕을 한다고 하는데 언제 그랬나. 오 시장 당선이 확정돼 기자회견을 하던 날 안 대표가 '야권의 승리'라는 소리만 강조했다. 자기만 선전했다. 명색이 선대위원장인데 금태섭 전 의원도 입은 국민의힘 당 점퍼를 한 번도 입지 않은 사람이 안철수다. 오세훈 시장 지원 유세 하는 건 좋다. 그런데 부산과 경기도에 간건 내년 대선을 위한 자기 홍보였다고 본다.
아사리판 국민의힘에 입당 안할 것"
5월쯤 되면 무슨 빛 보이지 않을까"
김 전 위원장은 현재 야권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 기대를 나타냈다. 그는 윤 전 총장에 대해 "5월 중 빛을 볼 일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국민의힘에 입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전망을 내놨다.
-윤 전 검찰총장을 높게 평가했는데.
▶지금 시대정신이 공정이다. 윤 전 총장이 시대정신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
-국민의힘에 입당할 것으로 보나.
▶안 갈 것 같다. 저 아사리판에 가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금태섭 전 의원이 말한 새로운 정당으로 가는 상황이 전개될지도 모른다.
-제3지대를 의미하는 것인가.
▶3지대라는 말은 쓰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이다. 이 나라 정치에서 정당은 대통령의 당이다. 대통령을 구심점으로 돌아가고, 대통령이 없으면 오합지졸이 된다. 그래서 강한 대통령이 될 만한 사람이 나오면 당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가게 돼 있다. 5월쯤 되면 무슨 빛이 보이지 않을까 한다.
-내년 대선에서 국민의힘 전망은.
▶이런 식으로 끌고 가서는 국민의힘으로 대선을 해 볼 도리가 없다. 정강 정책에 따라 의원들이 입법활동을 하는 것도 전혀 안 보인다. 그러니 일반 국민은 '저 당이 진짜 변했나'라는 말을 한다.
-현재 나온 후보들은 어떤가.
▶지금 백신 접종 등의 상황을 보면 현재의 코로나19 국면이 내년 대선까지 이어질 것 같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나라 경제와 사회 구조 전체가 바뀔 수밖에 없다. 그러면 내년 대선에서는 새로운 세상을 누가 잘 설계할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현재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 그런 사람이 안 보인다.
일처리에 있어선 깐깐하기로 정치권에서 소문난 김 전 위원장이지만 부인에겐 성실한 남편이고, 손자와는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누는 인자한 할아버지다. 부인인 김미경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김 전 위원장에게 반려자이자 인생의 가장 큰 조력자다.
'측근정치'를 혐오해 "측근이라는 존재를 두지 않는다"고 강조해온 김 전 위원장의 유일한 '찐'측근이다. 일 이야기를 집에서 잘 하지 않는 일반적 한국 남성과 달리 김 전 위원장은 부인과 많은 것을 상의한다고 한다.
김 전 위원장과 김 교수는 각각 서른다섯살과 서른살에 만났다. 수많은 선자리를 거쳤지만 베필을 찾지 못했던 '노총각' 김 전 위원장은 미국서 박사학위를 따고 귀국한 김 교수를 보고 "말이 통했다"고 했다.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선자리를 10분도 버티지 못했던 김 전 위원장은 김 교수와 처음 만나 몇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이후 두 사람은 만난지 3개월이 채 안돼 결혼했다. 김 전 위원장은 딸 한명에 손자 한명만 두고 있다. 이 때문인지 손자 얘기만 하면 잘 보여주지 않는 환한 미소가 저절로 나온다. 경선이 진행중이던 3월 마음고생이 심했을 때 김 전 위원장은 "우리 손자가 '할아버지,
[박인혜 기자 /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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