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이 지난 1일 대국민 성명을 통해 "초심으로 돌아가 내로남불 자세를 혁파하겠다"라고 약속했다. 세입자에게 무기한 계약 갱신 권한을 주자는 임대차 법안을 대표 발의했던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작 본인은 관련 법 시행 전에 월세를 크게 올린 데 대해 '내로남불' 비판이 쏟아진 데 따른 자성이다.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첫 글자를 딴 말로, 위선적 행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여권에서는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비슷한 이유로 정책실장에서 물러나는 등 악재가 계속되고 있다.
사실 '내로남불' 다시 말해 위선적 행태는 권력의 속성이다. 대부분의 경우, 인격의 문제가 아니다. 데이비드 데스티노 미국 노스이스턴대 교수 같은 심리학자들은 "인격이 아니라 장단기 이익의 균형 문제"라고 했다. 박주민 의원이나 김상조 전 정책실장의 인격이 보통 사람들보다 못하기 때문에 내로남불식 행동을 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권력이 그들의 뇌에 영향을 미쳐 장단기 이익의 균형점을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 임차인에게 무기한 계약 갱신 권한을 주자는 법안을 발의했음에도 정작 본인은 월세를 크게 올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매경 DB> |
특히 권력자는 더더욱 단기 이익을 탐하게 된다. 그들은 눈앞의 이익을 취해도 장기적으로도 손해를 볼 것 같지가 않다. 그들이 가진 권력을 지렛대로 자신들의 장기 이익까지 지켜내곤 한다. 권력자의 두뇌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권력자에게는 장단기 이익의 균형점이 단기 쪽으로 확 쏠리게 된다. 그 결과, 내로남불 같은 위선적 행위를 쉽게 저지르게 된다.
문제는 이 같은 내로남불 행태를 권력자 스스로 혁파하거나 정화할 수 있느냐는 것.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매우 어렵다. 앞서 밝혔듯이 권력이 그들의 장단기 이익을 모두 지켜줄 거 같기 때문이다. 눈앞의 이익을 챙겨도 미래에 손해 볼 거 같지 않으면 당연히 그렇게 한다. 인간은 애초에 그렇게 생겨 먹은 존재다.
결국 권력의 내로남불을 견제하려면 외부 견제가 꼭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눈앞의 이익을 취하면 가까운 미래에 분명히 손해 볼 거라는 신호를 권력자의 두뇌에 계속 보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선거가 그 같은 역할을 한다. 내로남불을 저지르면 표를 잃게 돼 권력의 지위를 박탈당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게 선거다. 그제서야 권력자의 두뇌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위선적 행태를 보이면 안 되겠구나 싶다. 김태년 대행이 갑작스레 내로남불 행태 혁파를 약속한 것도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패배할까 겁이 났기 때문이다. 만약 선거가 없다면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는 반응을 보였을 수도 있다.
감사원 감사나 검찰 수사 역시 내로남불 행태를 막는 장치가 된다. 권력자가 눈앞의 이익을 취하면 감사나 수사를 받을 수 있다는 신호를 계속 받는다면, 쉽사리 위선적 행태에 빠져들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권력자들이 때때로 그런 감사나 수사를 무력화시킨다는 것. 권위주의 국가일수록 감사와 수사를 권력의 시녀로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되면 권력자들의 위선적 행태가 더욱더 흔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권력자 스스로 내로남불 행태를 자제하는 게 최선이기는 하다. 권력을 잡으면 반드시 '행동의 준칙'을 리스트로 만들어 두는 게 좋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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