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정의당 김종철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대표단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1.1.11 [김호영기자] |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어 이번에는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같은당 장혜영 의원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 대표직에서 자진사퇴했다.
주요 제도권 정당에서 당 대표가 성비위로 사퇴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김 대표는 지난 15일 저녁 서울 여의도에서 장 의원과 당무 면담을 위해 식사 자리를 가진 뒤 나오는 길에 성추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스스로 "성희롱 성폭력을 추방하겠다고 다짐한 정당 대표로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반성한 뒤 "저에 대한 엄중한 징계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지난해 정의당 대표로 선출된 진보정치 세대교체의 아이콘이다.
그는 취임 직후 "민주당의 2중대를 거부하겠다"고 공언했고, "진보의 금기를 깨겠다"며 당 혁신에도 나선 상태다.
김 대표는 특히 젠더폭력 해결에 적극 관심을 보여왔고, 민주당이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 공천을 하려는 데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런 점에서 그가 동료 현역의원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자못 충격적이다.
하지만 시중에선 성추행 사건에 따른 사과와 대응 방식을 놓고 "자신들의 성폭력 비리를 애써 외면해온 민주당보다 정의당이 낫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광역단체장 3명도 권력형 성범죄의혹에 연루돼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았다.
안희정 전 지사의 경우 2018년3월 자신의 수행비서인 김지은씨를 성폭행하고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대법원에 징역 3년6월이 확정된 후 현재 수감 중이다.
피해자 김씨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이유로 지난해 7월 안 전 지사 등을 상대로 3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도 지난해 4월 부하 여직원에 대한 성추행 사건으로 사퇴한 뒤 검찰이 강제추행 혐의 등에 대해 본격 수사 중이다.
지난해 7월에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전직 비서를 수차례 걸쳐 성추행했다는 고소장이 경찰에 접수된 직후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오히려 전직 비서에 대해 '피해자'가 아닌 '피해 호소인'이라는 괴상한 표현을 써가며 2차 가해를 가했다.
게다가 법원이 지난 14일 다른 사건의 재판에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해를 인정했는데도, 친문세력들은 오히려 피해자에 대해 '꽃뱀' 등 온갖 모욕과 막말을 퍼붓는가 하면 '살인죄'로 고발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고 있다.
이 때문에 피해자는 극심한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 "2차 가해로 피가 말라가고 있다"고 도움을 호소할 정도다.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겨냥해 "(성비위) 사과 태도에 관한 한 정의당의 10분의 1이라도 따라가기 바란다"고 힐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범여권 진보진영에서 성범죄가 끊이질 않는 것은 운동권 특유의 폐쇄된 조직문화와 맞닿아 있다는 지적이 많다.
과거 독재정권에 맞서 사상교육과 의식화를 위한 집단적 합숙문화가 일상화하면서 일부 성적 일탈을 용인하는 잘못된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이다.
권력을 장악한 진보진영이 기득권층으로 군림하면서 권위주의와 위계질서에 젖어 들다보니 과거에 비해 여성 인권에 둔감해진 측면도 무시하기 어렵다.
반면 진보진영에선 "젠더 감수성이 떨어지는 보수진영과 달리 진보진영에선 성폭력 피해를 당당히 말할 수 있기 때문에 '미투'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즉, 성 인지 감수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보수진영에서도 성 비위가 많지만, 위압적 분위기 탓에 성범죄 피해자들이 차마 용기를 내서 자신의 얘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성 비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중대 범죄행위다.
더구나 국민의 공복으로 불리는 정치권 인사들이 성적 비위에 잇따라 연루된 것은 입이 두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성범죄는
차제에 범여권 진보진영은 개인의 성일탈을 넘어 경직되고 권위적인 내부 조직과 폐쇄적 문화 차원의 구조적 문제점은 없는지 겸허하고 냉정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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