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기로 정부 여당 사람들이 미국을 향해 "내정간섭"이라고 볼멘 소리를 낸 것은 유신독재 말기가 마지막이었다. 한국의 인권 문제를 걸어 걸핏하면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흔들었던 지미 카터를 대하는 박정희의 태도가 그랬다. "우리 문제는 우리가 알아서 할랍니다." 분위기가 험악했던 1979년 6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박정희는 카터에게 그렇게 말했다. 카터 외교는 도덕주의적 특징이 강했는데 주적인 소련을 비롯해 강성 독재국가에는 별 말 못하면서 만만한 우방은 시시콜콜 트집잡는 좀 찌질한 외교였다. 박정희는 그런 카터를 경멸했다.
그 후로는 그럴 일이 없었다. 전두환 정부는 레이건 정부와 '케미'가 잘 맞았다. '광주' 이후 김대중 처리문제를 놓고 미국은 한국 정부에 간섭했지만 물밑에서 이뤄진 일이었다. 노태우 김영삼을 거쳐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었다. 한때 정치 사형수가 대통령이 된 대한민국은 인권 문제에서 더 이상 미국에 꿇릴게 없었다. 그로부터도 20년이 넘게 지났다. 우리는 더 부유해지고 더 자유로운 나라가 됐다···고 생각했다.
정부 여당이 만들고 통과시킨 대북전단살포금지법(전단금지법)에 대해 외국 여러곳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자 더불어민주당은 대변인 공식 서면 브리핑에서 "한국 내정에 대한 훈수성 간섭"이라 반발했다. 그 뉴스를 보고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비애를 느낀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 40년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고 선진국 대열에 신규 진입한 사실상 유일 사례인 대한민국에서 '내정간섭' 주장이 나올 것이라 상상해본 일이 없다. 나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꿈에서 고3으로 돌아가 절망하곤 한다. 30년의 세월과 노력, 분투를 하룻밤에 무효화시키는 그 꿈은 어떤 악몽보다 고통스럽다. 가슴은 답답해지고 숨이 막힌다. '내정간섭' 성명을 보는 순간 꿈에서처럼 가슴이 옥죄어왔다.
지금까지 정부나 의회, 언론 등이 나서 전단금지법을 비판한 곳은 미국 유럽연합(EU) 영국 일본 캐나다 UN 등이다. 이른바 자유진영,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는 이 안에 거의 다 들어간다. 해방 이후 우리는 늘 그들을 동경했고 그 무리에 끼고 싶어했으며 언젠가부터 내심 그들과 같은 반열에 올라섰다고 자부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의 법을 '반인권적'이라 규탄하고 이에 대한민국 여당은 '내정간섭'이라 맞불을 놓고, 대한민국 외교부장관은 CNN에 출현해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 권리가 아니다"며 어디 회교국가의 외무장관처럼 말하고 있다. '이게 내가 아는 대한민국이 맞나' 하는 생각, 나만 드는 것인가.
현대사에서 선진국 진영의 인권문제 지적에 맞서 "내정간섭"을 외쳐온 국가군은 늘 정해져 있었다. 중국과 러시아가 대표적이고 이란을 비롯한 반미성향 중동 및 중앙아시아 일부 국가가 그렇고 카스트로의 쿠바가 그랬고 아프리카 독재 국가들이 그렇고 무엇보다 김씨 3대독재 북한이 그렇다. 자유진영에서 보건대 내정간섭 주장은 독재자들의 진부한 레토릭일 뿐이다. 대한민국이 지금처럼 잘 살지 않았을때도 그런 사리분별은 분명했다. 대한민국은 자유진영 멤버십과 선진국 (준)멤버십을 동시에 보유한 국가 중에서 내정간섭 주장을 펼친 유일한 사례가 아닌가 한다.
이 정부는 중국으로부터 지금껏 사드를 되물리라는 압력과 경제보복을 당하고서도 단 한번도 내정간섭 표현을 쓴 일이 없다. 국가안보는 내정의 핵심인데도 말이다. 대북전단을 무조건 막으라는 김여정의 공갈성 통보는 그 자체로 우리 내정에 대한 간섭이었다. 이 정부는 '김여정법'이라는 비아냥을 들어가며 그 공갈에 응하더니 이제 와서 이 법의 반인권성을 지적하는 선진국 문제제기에는 내정간섭이라 발끈 한다. 인식의 균형은 통합적 인격의 기본 자질이다. 도대체 무슨 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이 정부 인사들의 인식은 이렇게 이지러져 있는가.
평생 착한 아들로 살아오다 나이 들어 뒤늦은 사춘기에 빠져든 사내를 몇명 알고 있다.
[노원명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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