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임기간 중 노 전 대통령은 새로운 정치 실험을 위해 계속해서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현실 정치의 벽에 막혀 번번히 실패를 거듭했지만,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남북 관계를 진전시킨 점은 업적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임기 5년을 이권열 기자가 되돌아봤습니다.
【 기자 】
서민들 곁에 섰던 노무현 전 대통령.
노 전 대통령은 집권 과정부터 새로운 정치 실험의 연속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 역사상 처음으로 도입된 국민참여경선은 '노무현 주연'의 드라마였습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노사모'는 그 밑거름이었습니다.
"노사모가 고유명사죠. 그러나 저는 노사모를 고유명사로 보지 않습니다. 보통명사로서 어떤 시민적 행동의 한 모범이죠."
2003년 3월 취임 직후 가진 검사들과의 대화에서도 그의 파격과 실험은 계속됐습니다.
- 그때는 왜 검찰에 전화하셨습니까?
-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이듬해 3월. 총선을 앞두고 노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으로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기도 했습니다.
국민들은 도심을 가득 메운 촛불집회로 탄핵에 강력히 반대했고,
[효과음]
열린우리당은 총선에서 제1당으로 올라섰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국회 과반 의석을 기반으로 국가보안법 등 '4대 개혁 입법'을 추진하고 나섰지만 결국 뜻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버블세븐'이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치솟기 시작한 부동산 가격은 노무현 정부의 지지도에 치명타를 안겼습니다.
2005년 7월, 국면 전환을 위해 시도한 대연정은 물거품이 됐고, 이라크 파병과 한미FTA 관철로 진보 진영에게서도 외면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결국, 정국 타개책으로 마지막 임기 1년을 남기고 4년 연임제 개헌이라는 최후의 정치 실험에 도전했지만, 미완의 꿈으로 남았습니다.
"장기집권을 제도적으로 막고자 마련된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이제 그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2007년 10월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은 임기 말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중에 새 시대를 여는 맏형이 되고 싶었는데, 구시대의 막내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가 걸어온 궤적의 평가는 국민과 역사의 몫으로 남아있습니다.
MBN뉴스 이권열입니다.
< Copyright ⓒ mb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