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국가정보원의 대공 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하고 정보수집 권한만 국정원에 남겨두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여권이 권력기관 개혁을 이유로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없애고 간첩 혐의자에 대한 조사권만 부여할 경우 사실상 대공수사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커 우려스럽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이와 관련해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차 국정원·검찰·경찰개혁 전략회의에서 "국정원은 법과 제도에 의한 개혁을 완성하기 위해 정치개입 금지와 대공수사권 이관을 골자로 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빠른 시일 내에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할 것"이라며 "대공수사권을 차질없이 이관하고 안보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보침해 관련 업무체계를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정원은 대북·해외 전문 정보기관으로서 오직 국민과 국가의 안위에만 역량을 집중할 수 있도록 조직과 인력을 새롭게 재편해야 한다"며 "정보기관 본분에 충실할 때 국민으로부터 신뢰받고 소속원들의 자부심도 높아진다"고 했다.
여당에선 이미 국정원 출신의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4일 국정원 업무에서 대공수사권을 삭제하고 국내 정보 수집을 제한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경찰도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이관에 대비해 경찰청 산하 경찰수사 컨트롤타워로 신설될 국가수사본부내에 안보수사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이다.
한마디로 국정원은 간첩 혐의자에 대한 감청· 금융정보조회 등 개인정보 수집만 하고, 압수 체포 구금 등 수사권은 경찰이 맡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위협이 여전히 엄존한 상황에서 국정원의 대공수사와 대북 정보수집을 분리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 신중치 못한 처사라는 지적이 많다.
22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국민의힘 간사인 하태경 의원이 "국가 안보가 실험대상도 아니고 (경찰이) 역량을 완전히 갖추지 않았는데 (대공수사권을) 이관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은 것도 이 때문이다.
대북전문가들도 "대공수사권 폐지는 대놓고 간첩을 안잡겠다는 이야기" "북한 대남정찰총국에서 쾌재를 부를 것" "간첩은 통상 제3국을 통해 진입하는데 해외정보 수집이 어려운 경찰이 이를 제대로 잡아낼 수 있겠느냐"등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대공 범죄는 정보와 수사가 분리돼선 효율적인 대처가 불가능한데도 여권이 개혁의 명분과 이념에 사로잡혀 무리한 조직개편을 시도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국정원이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도 부족할 마당에 경찰이 대공업무의 공백을 제대로 메울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일각에선 현 정부가 바라는 국가보안법 폐지· 개정을 위해 그 전 단계로 국정원 수사권부터 없애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국정원은 1961년 중앙정보부로 출발한 뒤 1981년 국가안전기획부, 1999년 현재의 국정원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조직과 임무도 많이 바뀌었지만 대공 수사를 포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과거 국정원이 인권 침해와 고문수사, 불법 도감청 및 개인사찰 등으로 거센 비난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간첩단 체포 등 국가 안보와 자유질서 수호를 위해 애쓴 노력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실제로 대북전문가들은 "민족민주혁명단 간첩사건, 일심회 간첩사건, 왕재산 사건, 황장엽 암살기도 간첩사건, 이석기 내란사건 등의 경우 국정원의 대공 수사가 아니었더라면 제대로 밝혀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국가 안보라는 둑은 한번 구멍이 뚫리면 도저히 막을 수 없다.
현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 기조로 국가안보 태세와 군 기강이 상당히 느슨해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의 일갈처럼, 경제 실수는 만회할 수 있지만 안보 실수는 결코 원상회복이 되지 않는다.
안보가 무너지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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