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내부 비리 수사 확대를 저지하려 기밀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이태종(60) 전 서울서부지법원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기소된 사건들에 대해 4번째이자 6명째 무죄 판결입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김래니 부장판사)는 오늘(18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및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 전 법원장은 2016년 10∼11월 서부지법 집행관 사무소 직원들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 영장 사본을 입수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보고하는 등 수사 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법원 사무국장 등에게 영장 사본 등을 신속히 입수·확인해 보고하도록 부당한 지시를 한 혐의도 받습니다.
검찰은 이런 범행의 배경에는 수사 확대를 저지하기 위한 법원행정처 차원의 '제 식구 감싸기' 의도가 있었다고 의심합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와 같은 공소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봤습니다.
우선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와 관련해서 재판부는 이 전 법원장이 수사 확대를 저지할 목적을 갖지 않았고, 실제로 직원들에게 수사 기밀을 취득하라고 지시하지도 않았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임종헌에게 이를 부탁받았다고 인정할 자료가 없고, 수사확대 저지를 위한 조치를 한 사실도 확인되지 않는다"며 "증거에 의하면 피고인에게는 (집행관 비리에 대해)철저한 감사를 하겠다는 목적 외에 수사를 저지하겠다는 목적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법원 직원들에게도 이 전 법원장이 감사를 지시했을 뿐이라고 재판부는 덧붙였습니다.
재판부는 당시 서부지법 기획법관이 임종헌 전 차장에게 보고한 내용 중에 수사 기밀이 포함돼 있던 것은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획법관이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았을 뿐이며, 이 전 법원장이 이에 공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판부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역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전 법원장에게 수사 확대를 저지할 목적이 없었던 데다, 설령 영장 사본을 보고하도록 지시했다고 해도 이는 법원장의 정당한 업무이므로 직권남용에 해당할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밖의 지시 역시 위법·부당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날 이 전 법원장이 무죄를 선고받음에 따라, 사법농단 관련 사건에서의 무죄 행진도 계속 이어지게 됐습니다.
앞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 임성근 부장판사 등 세 건의 관련 사건에서 5명 모두에게 무죄가 선고된 바 있습니다.
이 가운데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의 혐의도 '사법부를 향한 수사 확대를 저지할 목적으로 영장 사건기록 등 수사기밀을 누설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재판부 역시 법원행정처에도, 신광렬 부장판사 등에게도 수사 확대를 저지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신광렬 전 부장판사 등의 사건과 달리 이 전 법원장의 사건이 다른 사법농단 사건에 미칠 영향은 다소 제한적일 것으로 보입니다.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차장 등의 공소사실에서 이 전 법원장과 당시 기획법관은 직권남용 행위의 공범이 아닌 상대방이기 때문입니다.
이날 재판부가 이 전 법원장의 지시를 '법원장의 정당한 업무'라고 판단한 점은 양 전 대법원장 등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의무 없는 일을 시킨 것이 아닌 셈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당시 기획법관이 임 전 차장에게 보고한 내용이 수사기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부분은 불리한 지점입니다.
이 전 법원장은 선고 후 떨리는 목소리로 "올바른 판단을 해 주신 재판부께 감사드린다"며 "30년 넘게 일선 법원에서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재판해 온 한 법관의 훼손된 명예가 조금이나마 회복될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다만 이 전 법원장은 재판 과정에서 '검찰권 남용' 등 항변한 것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검찰은 "항소해서 사실관계와 법리에 대한 판단을 다시 구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검찰은 "기획법관은 법정에서 법원장의 승인을 받고 행정처에 보고서를 보냈다고 진술
이어 "그럼에도 재판부는 공무상 기밀누설이 마치 기획법관의 단독 범행인 것처럼 결론 내렸고, 피고인은 '철저한 감찰 지시'를 했을 뿐 위법·부당한 지시가 없었다고 판단했다"고 반박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