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장관의 아들인 서모씨의 '군복무 특혜' 의혹을 놓고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인터넷에선 "우리 집 아들은 발목 수술하고 철심 박고 3개월만에 입대해서 지금 군 복무 중인데...엄마가 장관이 아니라서 미안하다" "아들이 어깨 다쳐서 수술받았는데도 고작 2박3일 병가를 받았다" "휴가 복귀 1시간만 늦어도 부대 전체가 뒤집히는데 억지를 써대며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등 군 자녀를 둔 부모들의 절망과 20-30대 젊은이들의 분노가 쏟아지고 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추 장관 아들 의혹을 사실상 제2의 조국 사태로 보고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마음에 빚이 없으면 손절하라"며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정의당 일각에서도 "민주당이 판단하기에 자신있다면 특임검사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이 지나친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며 추 장관을 엄호하고 있지만 성난 민심을 잠재우는데 역부족이다.
특히 추 장관측 보좌관이 군에 '청탁전화'를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라디오방송에서 "식당에서 김치찌개 빨리 달라고 하면 이게 청탁이냐, 민원이냐"고 비유한 것은 너무 어이없고 황당하기까지 하다.
이러니 진중권 전 동양대교수가 "비리는 나쁜 것이지만 그보다 더 나쁜 건 비리를 비호하는 것"이라고 질타할 만 하다.
여권에서 "군 청탁 의혹을 폭로한 당시 주한미군 한국군지원단장이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의 참모장 출신"이라고 목청을 높인다고 해서 사건의 본질을 덮을 수는 없다.
교육과 국방은 우리 사회에서 핵폭탄처럼 폭발성이 크고 민감한 이슈로, 특혜와 편법으로 공정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것은 국민의 '역린'을 건드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법무장관은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수호하고 법치주의 확립을 책임지는 주무부처의 수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10월 자녀 대학입시 의혹으로 조국 법무장관이 사퇴한 데 대해 "검찰개혁과 공정의 가치는 가장 중요한 국정 목표다. 온전한 실현을 위해 끝까지 매진하겠다"며 국민에게 고개를 숙인 것도 이런 사안의 민감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추 장관의 아들 의혹에 대해선 아직까지 공식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하지만 '제2의 조국 사태'로 비화돼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 동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는 감지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7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이 3주 만에 상승세를 멈추고 하락했다. 특히 20대에서 긍정 평가가 전주 대비 7.1%포인트 내리는 등 큰 폭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조국 사태 당시에도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취임 이후 최저인 39%까지 떨어진 바 있다.
추 장관 탄핵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한달 만에 20만명의 동의를 얻은 것도 이런 민심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청와대로선 아들 문제로 추 장관이 중도 낙마할 경우 그동안 공을 들여온 검찰개혁의 동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조기 레임덕까지 올 수 있어 선뜻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문 대통령과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9일 청와대 회동에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민생위기 해결 의지만 확인한 채 이 사건의 교통정리나 추 장관 거취 문제 등을 언급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번 사태를 수습하려면 당사자인 추 장관이 실기하지 말고 결자해지에 나서는 수 밖에 없다.
"소설쓰시네" "민원도 특혜도 없다"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추 장관이 뒤늦게 "검찰 수사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회피로 일관하는 무책임한 태도"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추 장관이 당장 할 일은 사건을 담당할 별도의 특임검사나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엄정한 수사를 지시하고 수사에서 일체 손을 떼는 것이다.
추 장관이 취임 직후 비직제 수사조직에 대해 법무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한 만큼 추 장관의 결심만 선다면 독립 수사팀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사건 고발 8개월이 되도록 수사를 미적거리고 있는 서울 동부지검은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추 장관 보좌관이 휴가 연장 문의전화를 했다"는 미2사단 지역대소속 대위의 진술을 누락하고, 휴가 미복귀 상태였던 아들 서모씨와 통화한 당직병사에게 오히려 증거를 내놓으라고 닦달한 수사팀을 누가 믿을 수 있겠나.
추 장관 아들에 대한 검찰 수사는 법무장관의 직무와 관련성이 높다는 점에서 '공직자 이해충돌'에 해당될 소지도 크다.
따라서 최소한 수사 기간 중에는 추 장관의 직무를 일시 중단시키고 법무차관이 이를 대행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
필요에 따라선 추 장관 또한 직접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
시간은 지금 추 장관의 편이 아니다.
'엄마 찬스'를 휘두르지 못한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라도 추 장관이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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