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석 슈퍼 여당의 새 대표로 국무총리 출신 5선의 이낙연 의원이 선출됐다.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새정치국민회의) 이후 25년만에 광주·전남 출신의 집권여당 대표가 탄생한 것이다.
이 대표가 지난 29일 전당대회에서 60.7%%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된 것은 코로나19 재확산과 경제위기 극복에 그가 최적임자라는 당 안팎의 표심이 반영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이 대표의 연고지인 호남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층인 친문 표심이 이 대표에게 쏠린 것으로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친문세력은 이 대표에게 양날의 검이나 마찬가지다.
이 대표가 친문세력의 전폭적 지원으로 국정 2인자에서 여당 원톱에 올랐지만, 향후 명실상부한 여당의 대선주자로 도약하는데 친문세력이 큰 장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앞으로 친문세력과 어떤 관계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그의 정치적 운명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전당대회 직후 이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언제든 이 대표 전화를 최우선으로 받겠다"고 축하했고, 이 대표는 "국난 극복과 국정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드릴 말씀은 드리겠다"고 화답했다.
이 대표는 또 전당대회 후 방송 인터뷰에서 "당청 관계에서 훨씬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력하겠다"며 "이번주 초 민생대책 당정청부터 가동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대표로선 여권내 대선주자로서 자신에 대한 선호도가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와 연동돼 움직이고 있는 만큼 당의 근간이자 핵심세력인 친문세력과 당분간 밀월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
하지만 그가 친문세력에 의존하고 그들의 눈치를 보게 될수록 내년 3월 대권 출마를 앞두고 절실한 중도외연 확장이 차단돼 지지 기반이 좁아지고 정치적 입지도 위축될 공산이 크다.
더구나 이해찬 당 대표 시절 여당이 국회 과반인 176석과 18개 상임위원장 독식에 따른 힘의 논리로 검찰개혁과 부동산 입법을 밀어붙여 비난여론이 거센 상황에서 이 대표가 친문세력에 자꾸 휘둘리다보면 그에 대한 중도 지지층의 이탈이 가속화할 수 있다.
집토끼를 잡으려다 숫적으로 훨씬 더 많은 산토끼를 놓치는 격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교수가 지난 30일 오전 유튜브에 공개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대담에서 "이낙연은 친문에 얹혀갈 것이다. 문재인 시즌 2정도로 전망이 밝지 않다"며 "차기 주자들도 당분간 저쪽(친문) 얘들의 눈도장을 받아야 한다. 강성 친문의 예쁨받을 소리만 하는데 대안이 없다"고 일갈한 것도 이런 염려에서다.
이 총리의 장점은 탁월한 행정능력과 풍부한 경륜 못지 않게, 정파에서 자유로운 안정적이고 무게감 있는 이미지다..
현재 여권내 최대 경쟁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처럼 순발력이 뛰어나고 시원한 '사이다' 발언을 하지는 못하지만, 신중하고 절제있는 언행이 그를 돋보이게 한다.
하지만 김원웅 광복회장의 막말 옹호 등 그가 이번 당 대표 출마 과정에서 보여준 석연찮은 행보는 강경 친문세력에 주눅이 든 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으로 비쳐져 실망스럽다.
이 대표가 앞으로 확실한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하려면 지금처럼 친문세력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기보다, 민심에 더 귀를 열고 새로운 비전과 대안을 위해 친문세력과 과감히 결별할 각오를 해야 한다.
때에 따라선 친문세력의 좌장인 문 대통령의 존재를 극복하는 건설적인 모습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요즘 여당 안팎에서 자주 회자되는 얘기가 "현 정권의 정책 지향성이 지난 2009년 일본 민주당 정권과 닮았다"는 지적이다.
일본 전문가인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일본 민주당은 2009년 총선에서 308석(중의원)의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했지만, 경험과 능력 부족에다 '사람 우선'의 무상복지, 동일본대지진에 따른 '탈원전'극약처방, 센카쿠 열도 분쟁 당시 중국 경제보복 등으로 국민 불신이 커지면서 3년 뒤 총선에서 57석에 그쳐 궤멸했다.
민심과 괴리된 정권의 오만과 독선이 몰락을 부른 것이다.
동아일보 주일특파원을 지낸 이 대표 또한 일본 민주당의 이같은 흑역사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진보진영의 원로학자인 최장집 명예교수가 현 정권과 민주당을 향해 "다수의 지배가 무차별적으로 결정 원리가 된다면 다수 독재나 다름없다"고 일갈한
이 대표는 지난 달 7일 당 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너는 어디에서 무엇을 했느냐는 훗날의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지금과 같은 절체절명의 국난 위기 앞에서 이 대표가 어떤 해답을 내놓을지 지켜볼 일이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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