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오늘(10일) '대미 스피커'로 나서며 2인자의 위상을 과시하는 동시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역할 분담을 통해 북미정상회담에 최소한의 여지를 남겼습니다.
김 제1부부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최근 한미 양국에서 집중적으로 제기된 제3차 북미정상회담의 연내 개최 가능성을 "북한에 무익하다"는 이유로 일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생각이기는 하지만", "두 수뇌의 판단과 결심에 따라 어떤 일이 돌연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 등의 발언으로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개최 의지를 보인 연내 북미정상회담을 사실상 거부하면서도, 정상회담의 최종 결정권은 김 위원장이 쥐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 제1부부장은 올해가 지나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지난해 2월 '노딜'로 끝난 하노이 정상회담 때의 '영변 폐기-일부 제재 해제' 카드가 재논의되지 않을 것이라는 등 북한의 향후 대미외교 방향과 협상 기조 전반을 상세히 피력했습니다.
그는 또 막말성 대미 비난은 자제하면서도 "경제적 압박이나 군사적 위협 같은 쓸데없는 일에만 집념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두고 봐야 할 것", "위험한 행동에 나선다면 잠자는 범을 건드리는 격이 될 것이며 결과가 재미없을 것" 등 비교적 날 선 경고를 쏟아냈습니다.
김 위원장의 혈육이자 지근에서 국정 전반을 보좌하는 최측근인 그의 이러한 발언은 사실상 김 위원장의 속내와 입장을 그대로 담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북한은 김여정 제1부부장 담화라는 형식을 취해, 미국의 태도 변화나 자국의 이익에 따라 김정은 위원장이 언제든지 기존 입장을 번복하는 최종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결국 김 제1부부장은 채찍을 쥔 악역을 맡은 셈이고, 향후 김 위원장은 당근을 쥔 '해결사'로 나설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정은 생각을 김여정 담화로 표출한 것이 특징"이라며 "트럼프의 3차 정상회담 의사에 대한 답신으로 3차 회담의 기대감을 은근히 내비치면서도 3차 회담은 이러한 회담이 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선제적으로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각각 '굿캅'과 '배드캅'을 맡은 김정은과 김여정의 역할 분담은 올해 들어 여러 차례 반복됐습니다.
특히 지난달 탈북민 대북전단 살포에 반발할 때 김 제1부부장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대남 도발을 주도한 반면, 김 위원장은 당 중앙군사위 예비회의를 통해 강경 군사계획을 막판 보류하며 남북 관계의 파국을 막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는 북한이 자신들의 요구 관철을 위한 '벼랑끝 전술'을 쓰면서도 최고 지도자의 결정을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는 방식을 통해 남북·북미 관계에 여지를 주고 회복 불가능한 수준까지는 내몰지 않으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아울러 김 제1부부장은 이날 담화를 통해 대남관계뿐 아니라 대미관계 등 대외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2인자의 위상을 다시금 과시했습니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7일 인터뷰에서 북미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거론하고, 연이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고위 지도자들' 사이의 만남을 언급한 상황
김 제1부부장은 3월 22일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다며 이에 화답하는 담화를 발표, 대미 관계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을 이미 시사한 바 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