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 소속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9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진보 진영 의제를 선점해 보수 색채를 빼려고 시도하는 것에 대해 견제구를 날렸다. 원 지사는 통합당이 '진보의 아류'가 돼선 안된다며 "대한민국 보수의 이름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유전자"라고 강조했다. 차기 대권 도전을 공식화한 원 지사가 보수 진영 내 입지 다지기에 나섰단 평가가 나온다.
원 지사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미래혁신 포럼'에서 '21대 국회에 바란다'는 제목으로 특강을 진행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실력을 인정할 수 없는 상대에게 4연속 참패를 당하고 변화를 주도했던 우리의 자랑스런 전통을 잃어버리고 외국 히딩크 감독에 의해 변화를 강요 받아야 하는 현실에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라고 밝혔다. 외국 히딩크 감독이란 원외 인사인 김 위원장을 일컫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나아가 "진보의 아류가 돼선 영원히 이류고 영원히 집권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김 위원장이 기본소득 제도 도입 등 그간 진보 진영에서 주로 거론된 화두를 던지는 것에 불만을 표한 것이다. 원 지사는 "세계사에 유일무이하게 식민지 후진국에서 G12로 수직상승한 나라가 대한민국이고 그 성장을 주도했던 건 대한민국 보수"라며 "하지만 정면돌파, 경계확장이란 담대한 보수의 발전 동력이 어느 때부터인가 희미해졌다. 왜 이렇게 소심해졌고 쪼잔해졌나"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금 사명은 저희가 물려받은 담대한 보수 유전자를 회복하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역사의 담대한 변화를 주도해왔던 바로 그 보수의 유니폼을 입고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김 위원장이 '보수란 말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원 지사는 아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용병과 외국 감독에 의한 승리가 아닌 우리에 의한 승리"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이른바 '좌클릭' 시도를 우려하는 보수 지지자들을 끌어안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최근 차기 대권 도전을 선언한 그는 이날 "나는 내 50세 넘는 평생 인생 중 가장 치열한 2년을 살아야겠다"고도 밝혔다. 원 지사는 "저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압축성장의 산증인이자 대표 상품"이라며 "제주도 가난한 농민의 아들에서 기회균등 성취를 온몸으로 증명한 사람이 바로 저"라고 소개했다. 이어 "이는 보수가 만든 기회균등, 인재육성의 질서"라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장에 참여한 다른 의원들도 김 위원장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최근 김 위원장을 연일 비판하고 있는 장제원 통합당 의원(3선·부산 사상)은 이날 "대통령 후보는 당의 권력자 눈에 들어서 배출 되는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같은당 홍문표 의원(
통합당 공천에서 배제된 후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권성동 의원도 이날 행사장을 찾아 눈길을 끌었다.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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