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7년 전 매입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쉼터'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매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정의연은 2013년9월 현대중공업이 기탁한 지정기부금(10억) 중 7억5000만원으로 경기 안성 금광면 상중리 토지 242평과 건물을 매입한 뒤 1억원을 더 들여 인테리어를 하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으로 꾸몄다.
하지만 이 쉼터는 서울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거주한 적이 없고 사실상 펜션처럼 운영돼왔다는 것이 마을 주민들의 증언이다. 심지어 쉼터에선 소주 맥주를 곁들인 바비큐 파티도 벌어졌다고 한다.
또 정의연은 단체 대표를 지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의 아버지에게 쉼터 관리를 맡겨 펜션관리 명목으로 수년간 월급을 지급해왔다. 2014년1월부터 2018년6월까지 윤 당선자 부친이 받은 액수가 7580만원 가량이다.
이같은 의혹이 불거지자 정의연은 뒤늦게 "친인척을 관리인으로 지정한 점은 사려깊지 못해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정의연이 쉼터를 구입하게 된 배경과 거래 가격도 수상쩍다.
윤 당선자 남편인 김삼석씨가 운영하는 수원시민신문 기사(2013년11월27일)에 따르면 윤씨 부부와 친분이 있는 당시 이규민 안성신문 대표(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가 쉼터 매매를 중개한 것으로 돼 있다.
당시 안성신문 운영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금호스틸하우스(건설사) 김모 대표가 집을 지었고, 해당 언론사 대표였던 이 당선자가 중개해 정의연이 이 쉼터를 사들였다는 것이다.
이 당선자는 지난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김학용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다.
부동산 등기에 따르면 쉼터 토지의 직전 거래가(2007년4월)는 3520만원이다.
정의연은 "건축비(건물 연면적 59평)가 평당 600만원이었다"고 해명하지만, 업계에선 지가 상승 및 건축비 등을 포함하더라도 6년 만에 직전 토지 거래가의 10배에 달하는 가격을 땅값(4억원)으로 지불한 것은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해당쉼터 주변에서 거래된 전원주택들의 평당 가격은 78만원~149만원에 불과하다.
정의연이 지난달 매입가와 인테리어 비용을 합친 가격의 반값 수준인 4억2000만원에 쉼터를 서둘러 매각한 이유도 석연찮다.
참여연대 출신인 김경률 회계사는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반적으로 매매할 때 다운계약서를 쓰고 그것에 근거해 돈의 일부만 법인 계좌에 넣고 차액은 별도 개인 계좌 등을 통해 받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마포에 소재한 정의연이 소식지 편집과 디자인을 굳이 윤미향 당선자 남편이 운영하는 수원 신문사에 맡겨 제작비를 건넨 것도 논란거리다.
미래통합당이 윤 당선자 의혹과 관련해 "NGO(비정부기구) 족벌 경영", "기부금 빼먹기 가족연대"라며 맹공을 퍼붓고 수사를 촉구하고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않다.
이 대목에서 궁금한 것은 그동안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 문재인 대통령이 왜 이번 사태에 대해선 침묵을 지키고 있느냐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7년12월 박근혜 정권이 일본과 체결한 12·28 위안부 합의에 대해 "무엇보다 피해 당사자와 국민이 배제돼 매우 뼈아프다"고 했고, 2018년1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도 "정부는 피해자 중심 해결과 국민과 함께 하는 외교라는 원칙 아래 후속조치를 마련해달라"고 강조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견을 최대한 경청해 사태 해결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또 취임 후부터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서울중앙지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이 연루된 돈봉투 만찬사건. 이명박 정부 시절의 4대강 사업, 기무사의 촛불집회 계엄령 검토사건, 사법부 행정권남용의혹사건, 김학의 장자연 사건 등에 대해 신속한 수사와 감찰, 진상 조사를 지시해왔다.
국민적 의혹이 불거진 중대 사건에 대해선 항상 엄정 수사를 독려해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 또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정의연에 갖고 있는 불신과 의혹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이 나서 국세청과 검찰에 철저한 조사와 수사를 지시하는 것이 맞지 않나.
또 의혹을 제기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언론들을 '친일 세력'으로 몰아붙이며 '제편 감싸기'에 급급한 여권 일부 인사들의 행태도 엄하게 질책해야 되지 않을까.
우리가 일본에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배상을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도덕적 우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도덕성과 투명성이 무너지게 되면, 우리가 일본에 강조한 정의와 평화, 인권과 여성의 가치도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수 밖에 없다.
이번 의혹으로 정의연이 30년동안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쏟은 헌신과 노력이 퇴색될 조짐을 보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정의연이 일궈낸 성과와는 별개로,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선 낱낱이 진상을 밝혀야 다시는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고 이번 사태를 정의
이럴 경우 지난해 '조국 사태'처럼 국민적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결국 시민들이 진상 규명을 외치며 광장과 거리로 뛰쳐나오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지금은 대통령의 침묵이 능사가 아니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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