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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동주 선교사가 자신이 운영하는 독일 베를린 내 하심 사무실에서 자신의 업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 김정범 기자] |
독일 베를린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나동주 선교사(52)는 북에서 온 학생들의 미래 설계를 도우면서 한반도의 통일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11년도 9월 홀연히 독일로 왔다. 전북 익산의 한 교회의 부목사로 있던 때였다. 통일선교사라는 직책으로 독일로 왔을 때 주변에서는 의아해했다고 한다. 당시 북한을 돕는 이들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를 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나 선교사는 "2~3년 북한에 대해서 공부하고 준비를 하면서 비슷한 시기 분단을 경험했던 독일을 배워야 겠다고 생각해 교회에 (독일로) 보내 달라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베를린으로 건너와 지난 2015년도 통일기도모임을 만들었다. 이 것이 현재 그가 운영하고 있는 비영리단체 하심의 모체다. 이듬해인 2016년부터 장학프로그램과 통일비전캠프를 시작했다.
통일장학사업을 통해 북측 출신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나 선교사는 "탈북청년 선발하고 교육을 통해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지난 2기까지는 북측 출신 학생들을 선발했고, 향후 남측 학생들에게도 기회의 문을 넓힐 생각이다. 나 선교사는 "탈북청년 뿐만 아니라 남한의 학생들도 통일한국을 이끌어갈 주역이 될텐데 동일하게 기회와 비전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고 전했다.
그가 운영하는 베를린 통일비전캠프도 올해로 4회째를 맞는다. 올해도 한국은 물론 유럽 등 각지 청년들을 초청해 7박8일 동안 통일 관련 교육과 토론을 했다.
나 선교사는 "공부를 하면서 독일통일 과정과 분단된 한반도를 깊이 들여다보고 관심을 갖게 됐다"며 "독일은 이미 통일됐는데 비슷한 시기 분단을 경험한 한국은 분단된 상태로 있어야 하는지 고민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독일에 정착했을 당시 눈여겨 봤던 모델은 바로 독일통일의 발단이 된 라이프치히 기도운동이었다. 앞서 지난 1980년대 초 매주 월요일, 라이프치히 교회에서는 자유와 평화를 위한 기도회가 있었다. 기도모임이 도화선이 되어 지난 1989년 10월 9일 기도회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과 시민들이 한 손에는 촛불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한 민족'이라고 적힌 구호의 팻말을 들었다.
이후 약 7만여명이 동참한 평화운동으로 확산됐으며, 198
나 선교사는 "통일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동기부여가 필요하고 우리 나라의 분단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전했다.
[김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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