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내려진 대법원의 일본기업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둘러싸고 한일 정부의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강제동원 추가 피해자가 포함됐을 것으로 보이는 일본 탄광의 조선인 근로자 명부가 공개됐습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역사기록관은 어제(31일) 강제동원 기록물 수집 전문가인 재일동포 고(故) 김광렬(1927∼2015) 씨로부터 기증받은 자료 가운데, 일본 후쿠오카(福岡)에 있는 '가이지마(貝島) 오노우라(大之浦) 6·7 탄광 근로자 명부'와 관련 사진 원본을 공개했습니다.
탄광 관리자가 작성한 이 명부에는 1900∼1950년 탄광 직원의 이름과 생년월일, 본적, 가족관계, 고용연월일, 해고일, 도주·사망 등 해고 사유가 기록돼있습니다.
국가기록원은 본적지와 이름으로 볼 때 이 명부에 오른 8천486명 중 1천896명을 조선인으로 추정했습니다. 연령대는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고 부산 본적의 15세 소녀도 '배급원'으로 포함됐습니다.
조선인 근로자의 이름과 본적지를 분석한 결과 이 중 1천770여명은 국가기록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강제동원자 명단(중복자 포함)에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국가기록원은 "오노우라 6·7번 탄광 근로자 명부에 있는 조선인 중 강제로 끌려온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아직 알 수 없지만, 기존 강제동원자 명단에 없는 피해자가 추가로 확인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이 명부는 1976년 폐광 당시 김광렬 씨가 탄광 직원을 수차례 찾아가 설득한 끝에 입수한 것입니다. 1944년 일본 경찰 조사 자료에 따르면 오노우라 탄광은 아소 다로 전 총리 일가가 운영해온 아소탄광에 이어 후쿠오카현 안에서 두번째로 많은 조선인을 동원한 곳입니다.
김광렬 씨는 1943년 일본으로 건너가 후쿠오카 지역에서 생활하며 40여년간 일본 3대 탄광이자 대표적 조선인 강제동원 지역인 치쿠호(築豊)를 중심으로 강제동원 관련 기록물들을 수집했습니다. 국가기록원은 김광렬 씨의 기증 기록물 중 명부 형태 248권에 수록된 조선인·일본인 등 전체 14만명의 인적사항을 데이터베이스(DB)화해 연내 홈페이지에 공개할 예정입니다.
허광무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은 "강제동원과 관련해 일본 기업의 노무 관리자가 현장에서 직접 작성한 근로자 명부는 아주 희귀한 자료"라며, "추가 피해자가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부차원에서 다시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전시 강제동원을 위해 1940년 3∼9월 한반도 내 노동력을 치밀하게 조사한 내용을 담은 '노무자원 조사에 관한 건' 문건 원본도 함께 공개됐습니다.
문건에 따르면 조선총독부는 각 도지사에게 1940년 3월 말 기준으로 농업에서 벗어나 잠시 타지에서 돈을 벌고 싶어하거나 직업을 바꾸려는 출가(出稼)·전업(轉業) 가능성이 있는 인원을 조사하도록 했습니다.
문건은 "과잉 노동력의 소재와 양을 밝혀 전시 노무대책에 이바지하고자 농촌에서의 노무자원 조사를 행함"이라고 조사목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강제동원 주 대상층으로 볼 수 있는 조사대상 연령은 남성은 20∼45세, 여성은 12∼19세였습니다.
조사 결과 '출가·전업 가능 인력', 즉 동원 가능 인원은 남성 92만7천536명, 여성 23만2천641명 등 총 116만177명으로 파악돼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조선인 총인구 2천354만7천465명의 5%에 해당합니다. 어린이와 노인, 20세 이상 여성 등 조사대상이 아닌 인구를 제외하면 총인구의 10%를 차지합니다.
자발적으로 농업에서 벗어날 의사가 있는 '출가·전업 희망 인력'은 남성 24만2천314명, 여성 2만767명 등 총 26만3천81명이었습니다. 가능인력 대비 희망인력 비율은 22.7%로, 남성이 26.1%이고 여성은 8.9%입니다.
당시 일본의 노무동원계획 상 동원 예정 조선인 수는 1939∼1941년 3년간 누적으로 25만명을 넘어 1942년부터는 조사에서 파악된 출가·전업 희망 인력을 초과하게 됩니다. 1939∼1944년까지 6년간 동원 예정 인원을 합치면 71만4천800명에 이릅니다.
국가기록원은 "조사 결과와 노무동원계획 인원을 비교하면 일제의 조선인 인력동원이 강제로 이뤄졌고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됐음을 알 수 있다"며, "특히 여성의 전출 가능 대비 희망자 비율이 8.9%에 불과한 점은 여성의 동원이 더 강제적이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내용은 그간 학계에서는 논문 등을 통해
이소연 국가기록원장은 "이번에 공개하는 자료 대부분은 관련 전문가도 실체 확인이 쉽지 않았던 희귀 기록물"이라며, "피해 진상규명과 권리구제 관련 연구에 귀중한 사료"라고 말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