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더불어민주당 이수혁 의원 |
우리 정부가 올 한해 부담해야 할 주한미군 주둔 비용은 1조 389억 원. 일반인은 가늠조차 되지 않는 1조 원 넘는 금액을 내는 것보다, 당장 1년 뒤 미국의 인상 압박을 또 견뎌야 하는 것이 더 큰 부담입니다. 협상의 무게는 당국자가 지지만 그 납부의 무게는 모든 국민이 지기 때문이죠.
지난 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수혁 의원과의 방위비 분담금 관련 통화 내용을 공개한 건 이런 이유였습니다.
이 의원은 구체적인 금액을 확인하는 기자에게 "국민들이 정확하게 알아서 뭐해?"라고 답했습니다. "국민이 1조 400억 원이면 어떻고 1조 500억이면 어때 (미국이 요구한) 1조 4천억 원만 아니면 되지"라고도 언급했습니다.
5분 정도 통화에서 '권위'라는 단어도 몇 차례 등장했습니다. 본인이 오전 회의 때 밝힌 것보다 더 자세하게 얘기하는 건 자신의 권위를 헤친다는 논리였습니다. 이 의원은 자신이 말한 정도만 쓰라며 "나 같은 사람은 권위로 사는 사람이다, 내 권위를 훼손시키는 일은 안 한다"고 강하게 말했습니다.
선뜻 동의할 수 없는 '권위'기도 하지만, 국민의 알권리와 국회의원의 권위 중에 어떤 것이 앞서는 것인지 굳이 논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 의원은 자타공인 외교 전문가입니다. 참여정부 때 외교부 차관보를 지냈고 6자회담 첫 수석대표로 참여했죠. 국회 외통위는 4선 이상 중진급 의원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데, 초선 비례대표인 이 의원이 여당 간사를 맡은 것도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요즘 같은 한반도 격동기에 남북미 핵심 정보를 다루고 다년간 쌓은 외교력을 바탕으로 당정 협의를 주도하는 게 이 의원 역할이죠.
전화를 끊고 역지사지해봤습니다. 지난했던 분담금 협상 과정에서 백방으로 뛰었을 당국자들의 노력을 잘 아는 '전문가' 입장에선 100억 원 차이가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묻는 기자에게 "이게 최선이야!"라고 외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최종 서명 전이니 혹시 모를 돌발상황에 대비해 정확한 숫자를 밝히는 것이 조심스러웠을 수 있습니다.
백번 양보해 이런 사정을 가늠하더라도 국민이 낸 세금을, 그것도 천문학적인 규모가 투입되는 항목에 대해 "정확히 알 필요 없다"는 반응은 대단히 적절치 않습니다. 국정감사 때 피감기관을 매섭게 질책할 때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고 수시로 "국민을 대표해서 묻는다"고 했던 국회의원의 발언이 맞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무엇보다 '1인 헌법 기관'으로서 국회의원이 쥔 모든 정치권력은 "내 세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고 묻는 그 국민이 부여했다는 걸 진정 모르는지 묻고 싶습니다.
기사가 나가고 수많은 네티즌들은 '민중은 개·돼지' 발언을 떠올렸습니다. 과정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결과물만 툭 내놓으면 감사해야 하냐고 반문했습니다. 야당은 "국민의 존재를 무시한 망언"이라고 논평(바른미래당)했고 외통위 여당 간사직 사퇴를 요구
만약 당시로 돌아가 이 의원과 다시 통화한다면, 그래서 그만 물으라고, 알아서 뭐하느냐고 하거든 사실 관계만 짚고 싶습니다.
다름 아니라 혈세입니다, 의원님.
박유영 기자 [shine@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