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북한 개성 지역에서는 아침에 거리의 스피커에서 영어학습 방송이 흘러나온다. 마치 남한 시골마을에서 이장님이 마을회관에 있는 마이크로 방송을 하는 것처럼 영어학습 방송이 흘러나온다. 남북·미북 정상회담이 열리며 한반도 대화국면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북측의 변방인 개성에 살고있는 사람들도 이렇게 다가올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달라진 북한의 모습은 최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운영 100일에 즈음해 기자들을 만난 김창수 부소장 겸 사무처장을 통해 전해졌다. 김 처장은 현재 주중에는 30여 명의 남측 정부 당국자·지원인력과 함께 개성에서 상주하며 북측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남북관계의 최전선에 서서 매일 북측과 연락을 주고받고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김 처장은 "실제 이야기하다 보면 북측 사람들 입에서도 영어가 막 튀어나온다"면서 "북측과 협상하다가 무슨 이야기가 나오니까 그쪽에서 '오버한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남북 인원들이 함께 부대끼며 일하다보니 북측 사람들도 영어나 외래어를 섞어서 말하는 것이 그만큼 더 자연스러졌다는 이야기다.
이날 김 처장이 전한 '개성연락사무소의 100일' 에피소드 가운데에는 이처럼 미국에 대한 북측 사람들의 인식·태도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대목들도 있었다. 그는 "북측에 대미 공공외교가 중요하다면서 이런 차원에서 '미국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더니 뜻밖에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도 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만나서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상황에서 대북제재 해제와 외자유치를 원하는 북한 사람들도 '필요하면 미국에도 가고 미국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겠다'는 생각의 일단을 보여준 셈이다.
김 처장은 "북미 고위급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뒤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공동으로 대미 공공외교 추진하는 방향으로 북측과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면서 남북 공동 미국 방문 가능성을 열어뒀다. 남북이 함께 손잡고 미국을 방문하는 구상이 당장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대북제재가 풀리고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논의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지난 9월 개소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는 약 석달 동안 모두 285차례의 남북 간 회담·협의가 진행되며 남북 대화의 새로운 장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당국간 회담 5회 △실무회의 5회 △소장회의 10회 △부소장회의 26가 열렸다. 남북은 사무소에서 하루 평균 2.9차례 대면 접촉을 했고 통지문 173건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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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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