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진원지로 지목된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를 폐지하는 대신 외부인사들이 참여할 것으로 전망되는 사법행정회의를 설치해 사법행정권한을 맡기겠다고 밝혔습니다.
김 대법원장은 오늘(20일)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을 통해 "여러 문제의 출발점으로 지목된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관련 법령이 정비되는 대로 가칭 '사법행정회의'에 사법행정에 관한 권한을 부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법원행정처는 오로지 집행업무만 담당하는 법원사무처와 대법원 사무국으로 분리·재편하겠다"며 "여건이 마련되는 즉시 대법원과 법원사무처를 공간적으로도 분리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김 대법원장은 또 "새로 구성될 법원사무처에는 상근법관직을 두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불거진 원인 중 하나로 법원행정처 상근법관제를 지적하는 의견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2019년 정기인사를 통하여 법원행정처 상근법관을 현재의 3분의 1로 줄이고, 김 대법원장의 임기인 2023년까지 상근법관제를 완전히 폐지한다는 방침입니다.
또한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 외부의 각종 기관에 법관을 파견하는 일을 최소화하고, 법관 전보인사에 있어 인사권자의 재량 여지를 사실상 없애겠다"고도 약속했습니다.
이외에 ▲ 사법행정구조의 개방성을 확보하고, 사법에 대한 국민의 접근과 참여를 확대하는 방안과 ▲법관의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구조적인 방안도 시급히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음은 전문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법원 가족 여러분.
지금 사법부를 둘러싸고 진행 중인 여러 사건들로 인하여 법원에 대한 국민과 법원 가족 여러분의 실망이 큰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법부의 대표로서 여러분께 거듭 반성과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향후 법원의 제도개혁 추진과 관련한 제 생각을 몇 가지 말씀드리고, 그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법원이 마주하고 있는 전대미문의 위기는 법관들이 ‘독립된 재판기관으로서의 헌법적 책무’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관료화되고 권위적인 법원의 문화는 일부 법관들에게, 자신이 법관이 아니라 여느 위계조직의 구성원과 다를 바 없다는 왜곡된 자기인식과 조직논리를 심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폐쇄적인 인사 및 행정구조는 사법정책과 재판제도를 설계함에 있어 주권자인 국민의 관점을 소홀히 하고 운용자인 법원의 관점을 우선하는 사고를 갖게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추진할 사법부의 구조개편은 우선 법원의 관료적인 문화와 폐쇄적인 행정구조를 개선하는 데에 집중될 것입니다. 위계적인 법원 조직을 헌법이 예정한 대로 재판기관들의 수평적인 연합체로 탈바꿈시킴으로써 법관의 관료화를 방지하고, 정책결정과 제도설계를 수평적 회의체가 담당하도록 함으로써 행정구조의 폐쇄성을 극복할 것입니다.
사법부의 구조개편은 국민들이 즉시 변화를 체감하기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는 모든 사법개혁의 시작점이자 국민과 법원 가족 모두를 위한 진정한 사법개혁의 전제조건입니다. 법원의 관료화와 폐쇄성을 그대로 둔 채 추진되는 표면적 개혁은 사상누각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을 우리의 지난 역사가 가르쳐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평적이고 투명한 사법부를 가지는 것은 그 자체로 국민의 권리입니다. 관료화되고 폐쇄적인 법원의 구조 때문에 법관들이 독립적이고 양심적인 재판기관으로서의 헌법적 기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모두 국민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헌법이 보장한 독립되고 양심적인 법관의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가 훼손되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현안이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법원은 국민의 권리와 법치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국민들은 분쟁의 마지막 단계에서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법원을 찾습니다. 국민들은 법관을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오로지 내가 만난 법관이 독립적이고 양심적으로 심판해줄 것이라고 믿고 소망할 뿐입니다. 사후적으로라도 그 믿음이 깨어질 때 국민이 느끼는 배신감의 크기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법관은 국민의 신뢰를 배신하는 것이 국민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주는 일인지를 절실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법원의 관료화와 폐쇄성은 법관들이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서서히 뿌리내려 온 부분들이기에 이러한 잘못된 가치들과 완전히 절연하고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제 임기 내에 이를 반드시 이루어 내겠습니다. 그것이 우리 사법부는 물론 사회 전체의 도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또 저에게 부여된 역사적 사명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저의 사명을 되새기면서, 저는 오늘 사법개혁의 출발점에 다시 선 심정으로 향후 추진할 구체적인 개혁방안 중 일부에 관하여 간략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법관을 관료화시키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법관이 우리 주권자들의 뜻에 따라 독립된 재판기관으로 온전히 기능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여러 문제의 출발점으로 지목된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겠습니다. 관련 법령이 정비되는 대로 (가칭)사법행정회의에 사법행정에 관한 권한을 부여하고, 법원행정처는 오로지 집행업무만 담당하는 법원사무처와 대법원 사무국으로 분리⋅재편하겠습니다. 그리고 여건이 마련되는 즉시 대법원과 법원사무처를 장소적으로도 분리하겠습니다.
특히 법원사무처에는 상근법관직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 최근의 현안에서 문제된 일들은 상근법관직을 두지 않았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우선 2019년 정기인사를 통하여 법원행정처 상근법관의 1/3 정도를 줄이고, 저의 임기 중 최대한 빠른 기간 내에 법원사무처의 비법관화를 완성하겠습니다.
또한 사법부 외부의 각종 기관에 법관을 파견하는 일을 최소화하고, 법관 전보인사에 있어 인사권자의 재량 여지를 사실상 없애도록 함과 동시에 이를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법관이 오로지 재판에만 집중하고 이를 가장 큰 영광으로 여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나아가 헌법이 정한 대법원장, 대법관, 판사의 구분 이외에 법관들 간의 계층구조가 형성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법관인사제도의 이원화를 완성하는 한편 내년부터 당장, 사실상 차관 대우의 직급 개념으로 운영되고 있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를 폐지할 것입니다. 이는 법원 스스로 권위주의를 내려놓고 궁극적으로 모든 법관이 동일 직급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토대가 될 것입니다.
또한 2019년 정기인사부터 각급 법원 법원장 임명 시 소속 법원 법관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제도를 시범 실시하고, 가까운 시일 내에 가장 적합한 방식을 찾아 임기 내에 전국 법원에 안착시키겠습니다.
둘째, 사법행정구조의 개방성을 확보하고, 사법에 대한 국민의 접근과 참여를 확대하겠습니다.
(가칭)사법행정회의에 적정한 수의 외부 인사가 참여하도록 하고, 주요 사법정책 결정 과정에 국민들의 시각을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 모색하겠습니다.
또한, 법조일원화의 완성 시기에 맞추어 법관 임용 방식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민주적 정당성을 보완할 방안을 마련하여,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성과 전문성이 법관 구성에도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관련 법령의 정비와 실무 준비가 끝나는 대로, 누구라도 한 곳에서 임의어 검색 등을 통해 전국 법원의 판결서를 쉽고 편리하게 검색⋅열람할 수 있는 ‘통합 검색⋅열람시스템’을 도입하겠습니다. 나아가 위 시스템을 통하여 단계적으로 공개의 범위를 확대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셋째, 법관의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구조적인 방안을 마련하겠습니다. 이와 관련한 최우선적인 조치로서, 관련 법령이 정비되는 즉시 윤리감사관을 외부 개방형 직위로 임용하여 법원행정처로부터 분리한 후 성역 없이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법원 가족 여러분!
지난 3월 발족한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는 그동안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치열한 연구와 토론을 통해 매우 획기적인 개혁안들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난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이를 전폭적으로 수용할 것임을 밝혔습니다.
사법발전위원회가 건의한 내용을 구체화하는 실무적인 제반 후속조치 또한,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키지 않도록 법원행정처가 아닌 외부 인사와 법관대표들이 참여하는 별도의 추진단을 구성하여 투명한 절차를 통해 신속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저는 사법발전위원회, 전국법관대표회의, 법원공무원노동조합으로부터 법원 내⋅외부의 신망 있는 인사들을 추천받아, 대법원장 직속의 실무추진기구로서 ‘사법발전위원회 건의 실현을 위한 후속추진단’을 구성하고자 합니다.
추진단은 사법발전위원회 등으로부터 추천받은 외부 법률전문가 4인과 법관 3인으로 구성될 것이며, 법원행정처는 추진단에 대한 운영지원과 자료제공, 토론과 의견제안 등의 역할만 수행할 것입니다.
추진단은 2018년 10월 말까지 사법발전위원회가 건의한 내용 중, (가칭)사법행정회의의 신설과 법원행정처 폐지 및 대법원 사무국 신설 등에 관한 방안을 구체화하고 법원 내⋅외부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으로 관련 법률의 개정안을 마련하여 대법원장에게 건의하게 될 것입니다. 추진단이 성안한 법률안은 사법발전위원회의 논의 등을 거쳐 올해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입법을 추진하고자 합니다.
저는 추진단이 그 기한을 지킬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독려할 것이며, 그 활동 내용을 수시로 내외에 투명하게 알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사법부의 근본적인 개혁은 사법부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고 사법발전위원회의 건의 내용이 사법부 개혁의 전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향후 상고심제도 개선, 전관예우 논란이 계속되는 재판제도의 투명성 확보방안 등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사법부의 근본적인 개혁조치들에 관하여, 입법부와 행정부 및 외부 단체가 참여하는 민주적이고 추진력 있는 ‘보다 큰’ 개혁기구의 구성 방안도 조만간 마련하여 밝히겠습니다.
다만, 사법발전위원회가 이미 건의한 내용인 고등법원 부장판사 폐지 및 윤리감사관의 개방직화와 관련한 법률 개정안은 2019년 법관 및 직원의 정기인사를 고려할 때 하루라도 빨리 입법을 서둘러야 하는 상황입니다. 또한 위 2가지 주제에 대하여는 이미 법원 내⋅외부의 공감대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위 2가지 주제에 대하여는 추진단의 검토가 이루어지기 전에 곧바로 입법을 추진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는 시간 제약으로 인하여 불가피한 일이고, 위 법안이 제때 국회를 통과하지 아니하면 제가 사명감을 가지고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개혁 작업에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국민 여러분과 법원 가족 여러분의 이해를 구하며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법원 가족 여러분.
새로운 길은 두렵기 마련이고 그 두려움은 때때로 우리를 불안하게 하거나 초조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 그 두려움과 불안감을 극복하고 우리의 마음과 지혜를 모아서 함께 묵묵히 걸어가야 합니다. ‘정의롭고 독립된 법원’이라는 우리의 가치는 결코 포기할 수 없고, 이를 향한
사법부 안팎의 지혜와 힘을 모아 추진하는 사법부의 변화에 국민과 법원 가족 여러분께서 각별하고 따뜻한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풍성하고 행복한 한가위 명절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8. 9. 20.
대법원장 김 명 수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