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새 정부의 첫 주미대사 인선을 놓고 장고를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조되는 북한 핵 위기로 굳건한 한미공조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환경영향평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 한미 간 민감한 현안들이 잇따라 불거지고 있어서다. 대한민국 외교 최선봉 격인 주미대사 인선이 지연되면서 일본·러시아 등 나머지 한반도 주변 주요국 대사 인사도 늦어지는 상황이다.
청와대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21일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주미대사 인선이 2~3배수 정도로 압축된 상황이 아닌 것으로 안다"면서 "보다 많은 후보군을 놓고 검토 중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현재 청와대와 외교가 안팎에선 조윤제 서강대 교수,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 임성남 외교부 1차관, 김현종 한국외국어대 교수,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주미대사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위 전 대사와 임 차관은 정통 외교관 출신이고, 나머지 후보들은 외교부 바깥 인사들이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한국 외교가 지나치게 친미적이었다는 인식이 강해, 비(非) 외교관 인사를 주미대사로 발탁할 가능성이 있다.
이중 조 교수는 대선 당시 문 대통령의 정책캠프였던 '정책공간 국민성장'의 소장을 맡은 인연이 있다. 또 참여정부에서 대통령 경제보좌관과 주 영국대사를 지내 새 정부와 코드가 맞고 외교경험도 갖추고 있다. 조 교수는 지난 5월 하순 대통령 특사로 유럽연합(EU)·독일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조 교수 본인은 주미대사 직을 고사하고 있다고 한다.
한미FTA 재협상이 현실화하면서 참여정부에서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아 한미FTA 협상을 진두지휘했던 김 교수가 주미대사로 발탁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김 교수는 대선 기간 문 대통령의 외교 자문그룹이었던 국민아그래망에서 활약했다.
참여정부에서 외교부 장관을 지낸 윤 교수도 외교장관 재직 당시 자주적이면서도 전략적인 외교정책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유력 후보 중 한명으로 거론된다.
다만 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뒤 주미대사 인선 기류가 바뀌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국제외교 무대를 처음 경험한 문 대통령이 이전보다 외교부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새 정부 1기 인선에서 배제될 것으로 점쳐졌던 외교부 북미국 엘리트들이 전격 발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이런 맥락에서 새 정부 인사에서 외교부 1차관에 유임된 임성남 차관을 주목하는 기류도 있다. 북미국장을 지낸 위성락 전 대사도 유효한 카드다.
다만 김현종 교수와 위 전 대사의 경우 민간싱크탱크(여시재)에 몸을 담아 이광재 전 강원지사 라인으로 분류되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김 교수와 위 전 대사 모두 실력 면에서는 주미대사 감으로 볼 수 있지만 이광재 라인이라는 점 때문에 상당한 견제를 받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밖에 주중대사 자리에는 일찌감치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노영민 전 의원이 낙점된 반면 일본·러시아 대사 인선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주일대사 후보군으로는 하태윤 주오사카총영사, 김성곤 전 의원 등이 거론된다. 하 영사는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의전관과 국제의전비서관을 지냈다. 주러시아대사로는 정치인 출신 발탁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7개월째 공석인 주한 미국 대사 자리를 놓고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와 미 월가 금융계 인사간의 2파전 구도가 전개되고 있다. 미국 현지 외교 소식통은 "차 석좌가 매우 유력한 가운데, 주한 대사를 원하는 금융계 인사가 최종 후보군에 올라와 있는 것으로 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결정만 남았다"고 전했다.
차 석좌는 아들 부시 행정부 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아시아 담당 보좌관으로 일
'충성심'을 중시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을 고려할 때 예상 밖의 인선이 나올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오수현 기자 /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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